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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님의 블로그
자신이 거듭난 신자로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의 백성인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앙의 현재 상태에 따라 다소 간의 부침은 있겠지만, 적어도 아래의 모든 사항들에 대해 한 번 이상은 전심으로 수긍해본 적이 있어야 한다. (1)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재편성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가?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직업, 결혼, 취침, 기상(起床), 취미, 쉬는 시간의 활용을 하나님과 관련지어서 그 원칙에 따라 재편성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가? (2) 이 신앙의 도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성경을 읽고 싶어지는가? (3) 찬송가나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내 이야기 같이 느껴지는가? 그것에 의해 감동이 되는가? (4) 성령의 내주(indwelling)하심이 느껴지는가? 성령의 교훈하심을 느끼는가? (..
복음(福音)은 문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나와 상관이 없이 남에게만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오늘 나의 행복과 직결되는, 나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그런 의미에서 기쁜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명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요 3:16). … 사탄은 세상 나라를 세워 자기 스스로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복종시켜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엡 2:3). 사탄은 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죽음이라는 카드로 인류를 위협하였습니다(롬 5:12). 때로는 이런 죄를 지으면 너에게 이런 유익과 기쁨, 성공을 주리라고..
니케아 신경에서 동서방 교회는 성령께서 "성부로부터 나오셨다"라는 점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이 널리 사용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그리고 아들로부터"라는 뜻을 가진 "필리오쿠에"라는 말이 첨가 되었다. 이 구절을 첨가한 동기는 분명해 보인다. 성자의 영원한 나심이라는 오리겐의 견해가 실제로는 아리우스주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방교회에서는 반(半)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리고 "성령이 성부로부터 나오신다"라고만 말하는 것은 아들의 종속성을 주장하는 것과 유사한 견해에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이것이 서방교회에 의해 감지되었고, 그래서 서방교회는 성령의 영원한 나오심의 원천으로서 성자가 성부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담아주는 "필리오쿠에"라는 말을 첨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
2014년 10월 22일에 써놓은 글이다. [이 글은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하나님의 의중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때에,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을 수는 없는 그런 때에, 그렇다고 해서 삶과 생활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있는 그런 때에 쓴 글이다. 하나님과 그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검증 불가능하면서도 잡다하면서도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진술들이 난잡하게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때 정리해둔 글이다. 살기는 해야겠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원칙들을 정리해 두었다. 스스로가 확신할 수 있는 원칙들을 정리해 두었다.] (1)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되어야 큰 돈을 벌 수 있고 또 갑질을 할 수 있다. 정확히는 을로서 살지 않을 수 있다. 장사..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이 몇가지 있다. 논리적으로 추론될 뿐 별로 궁금하지는 않은 주제들이다. 다만 모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생각나는 것부터 모아두려고 한다. 아마 이 모든것에는 전 우주가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에서 주지주의에 왕좌를 주어서는 안된다.] 1.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인간을 만드셔 놓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 모른다. 쾌적한 주거환경, 멋진 외모를 가진 이성, 염려 없는 생활, 건강한 육체, 번영과 형통 이런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혹자는 '사랑하다'에 방점을 둔 명령이라 이해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1) '사명'과 '소명'을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 섞어 쓰도록 하겠다. 사명이든 소명이든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하나님이 신자가 이 땅에서 성취해 내기 원하시는 구체적인 과업(課業)' 또는 '하나님이 특정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주신 명령'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만약 소명이나 사명이 이런 의미라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2) 물론 하나님께서는 정말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을 주신다. 확실히 바울에게는 사명이 주어졌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을 주시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명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런 명령을 주시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인간, 특히 그 중에서도 남자들은 절대적으로 충성할 대상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성경 해석에 대한 온갖 (다른 말로 '도그마'라 불리는) 규제적 규범들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 만약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확정된 사실관계가 그대로 사실이 아닐 경우에,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전체 취지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라면 그에 대한 반대 증거들은 배척되어야 한다. (2) 귀납적으로 형성한 개념을 규범력을 갖는 공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구성한 거의 대부분의 개념들은 구체적인 맥락들 중에 흩어져 있는 공통되는 내용들을 편의상 귀납적으로 묶어 만든 개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자체가 다시 살아있는 규제적 성경 해석 원리로서 작동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것은 횡포다. (3) 성경..
나는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입장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본다. 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답해야 한다고 본다. (1) 우리는 사항별로 판단해야 한다. 어떤 정당이 내놓는 정책을, 그 정당이 내놓는 정책이기 때문에 지지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인물이 내놓는 정책을, 그 인물이 내놓는 정책이기 때문에 지지해서도 안 된다. 이 사항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지해야 할 정채이 어떤 정책인지, 저 사항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지해야 할 정책이 무엇인지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물론 어떤 정당이 내놓는 정책이나 어떤 사람이 내놓는 정책이 언제나 우리가 마땅히 지지해야 할 정책과 일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정책에 대한 지지 이유가 그 정책 자체에 있어야 한다는 말..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여야 겠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이 규칙을 정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저는 설교자가 자신의 기질이나 그 밖의 측면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설교자와 목회자를 위한 계획표를 일괄적으로 처방해 주려 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고 식사 전에는 무슨 일을 하며 식사 후에는 또 무슨 일을 하라는 식으로 정해줍니다. 서슴없이 계획과 순서를 정해 놓고 그것을 내세우며, 거기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죄인이나 실패자 취급을 합니다. 제가 그러한 발상에 반대하는 ..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크게 5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하여 실제로 발생하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신 바를 의미한다(아래에서는 ‘①뜻’이라고 줄여 부르기로 하자). 이 뜻에 속하는 모든 사건은 실제로 빠짐없이 발생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항에 대하여 작정을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이 없이 일어나는 사건은 없고, 하나님의 작정과 다르게 발생하는 사건도 없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①뜻에 따른 것이고, ①뜻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①뜻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만 작정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시는 도덕적 질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