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역사 (5)
대웅님의 블로그
하지만 우리가 마침내 서유럽 전역에 퍼뜨리는 데 성공한 현재의 지적 분위기로 볼 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학자들만 옛날 책을 읽는 데다가, 그런 자들 역시 우리가 워낙 잘 손봐 놓은 탓에 옛날 책에서 지혜를 얻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졌거든. 이건 우리가 역사적 관점이라는 것을 주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업적이다. '역사적 관점'이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학자가 옛 저자의 진술을 읽을 때 '이것이 진리인가'라는 한 가지 질문만큼은 끝끝내 던지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지. 학자들은 그 저자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진술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과 비교할 때 얼마나 일관성이 있는가, 이 진술은 저자의 발전 단계나 전반적인 사상사 속에서 어떤 단계에 해당하는가, 후대의 저자들에게는 어떤 영..
종교개혁 초기의 교황들은 보편 공의회의 소집을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일찍이 교황보다 종교회의가 우위임을 주장한 공의회 수위 운동의 부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분열이 항구화된 바울 3세의 재위 기간에야 '비로소' 로마에서는 보편 공의회의 소집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각종 복잡하고 난해한 협상 끝에 공의회가 1545년 12월 트렌트에 소집될 것이 결정되었다. … 이론상으로 볼 때는 이 회의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계속된 것이었으나, 그 기간의 대부분은 휴회 상태에 있었다. … 트렌트 공의회 이전의 대부분의 공의회들은 몇 가지 문제, 혹은 이단으로 고려된 교리 문제들만 다루었다. 그러나 트렌트 공의회 당시에는 프로테스탄트 측에서 제시한 문제들이 광범위하였으며 교회 개혁의 ..
저는 교육받지 못한 잉글랜드 사람은 역사에 대해 거의 철저한 회의주의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사복음서를 믿지 않는다면 거기 나오는 기적들 때문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복음서를 믿지 않는 진짜 이유는 2천 년 전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악티움 전투에 대해 듣는다 해도 똑같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 … 그의 머릿 속에서는 현재가 시야를 거의 몽땅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분리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옛날 옛적'이라 불립니다. 그곳은 말 탄 노상강도, 엘리자베스 여왕, 갑옷 입은 기사들이 어슬렁거리는 작고 우스운 정글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 옛날 옛적 너머에는 '원시인'이 있습니다. 그에게 원시인은 '과학'이지 '역사'가 아닙니다. 따라서 옛날 옛적보다 원시인..
휫필드와 다른 부흥사들이 직접 기록한 이야기를 읽어 보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사랑과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불러들이려는 간절한 열망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의 반지성주의를 단호하게 진달하려 한다면, 중요한 씨앗이 이미 뿌려지고 있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대각성운동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이 당시에 왜 그처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제1차 대각성운동 때 장로교를 비롯한 일부 교회가 실질적으로 부흥회파와 신앙고백파로 분열되었고, 동시에 어떤 집단들은 완전히 떨어져 나가 독립 교단이 되기도 했다(침례교회가 종종 그랬다). 그 두 진영을 갈라놓은 것은 회심시 감정이나 체험의 역할을 둘러싼 의견대립이었다. 대각성운동에..
'개혁신학' 혹은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 tradition)'라는 말은 로마 가톨릭의 오류를 시정하려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사상과 삶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며, 그 영향을 이어받아 발전한 이후 개신교 신학 사상 전체를 일컫는 포괄적인 용어다. '정통신학(Orthodox theology)'이라는 용어는 종교개혁이 발생한 다음 한두 세대가 흐르고 난 후에 발전한 신학 체계를 말하는데, 종교개혁 1세대들이 정립한 신학의 범위 내에서 상세하게 풀지 않은 것들을 총체적으로 다시 재정립하는 '바른 가르침'의 체계화 작업을 통해 정립된 신학을 말한다.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라는 이름이 여기에 첨가되기도 했는데 종교개혁 1세대들이 발견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