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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반지성화의 역사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6. 02:23

 휫필드와 다른 부흥사들이 직접 기록한 이야기를 읽어 보면,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사랑과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불러들이려는 간절한 열망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의 반지성주의를 단호하게 진달하려 한다면, 중요한 씨앗이 이미 뿌려지고 있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대각성운동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이 당시에 왜 그처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제1차 대각성운동 때 장로교를 비롯한 일부 교회가 실질적으로 부흥회파와 신앙고백파로 분열되었고, 동시에 어떤 집단들은 완전히 떨어져 나가 독립 교단이 되기도 했다(침례교회가 종종 그랬다). 그 두 진영을 갈라놓은 것은 회심시 감정이나 체험의 역할을 둘러싼 의견대립이었다.
  대각성운동에 반대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신앙과 거룩함이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이는 교회의 전례와 가르침에 참여하는 이른바 "기독교적 양육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것은 지식이 증가하는, 전적으로 합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것은 인간을 뛰어난 이성적 피조물로 보는 (고전적인 헬라문화에서 재생된) 계몽주의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열정"은 이성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불신을 받았다. 비판가들은 부흥사들이 무지한 서민들의 열정을 자극하여 사회질서를 전복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각성운동의 지지자들은 신학적 명제에 대한 지적인 동의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 또는 "새로운 탄생"이라고 했다. 이러한 주제는 유럽의 경건주의에서 온 것으로, 이성에 초점을 둔 계몽주의를 배격하고 감정을 중시한 낭만주의를 포용한 사조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감동을 받는 것이다"라고 제1차 대각성운동의 탁월한 이론가였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1743년에 썼다.
  … 기독교를 "가슴으로 느끼게"하는 것으로서 강조했다고 해서 복음주의자들이 명백한 반지성주의자였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초기 단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반대한 것은 지적인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경건과 합리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었는데, 에드워즈 자신이 아주 탁월한 사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가 두 층으로 나누어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흥사들은 정서적 회심(상층부)을 추구했고, 부흥운동을 반대한 이들은 합리적인 종교(하층부)를 변호했다. 
  … ① 주로 감정적 견지에서 신앙을 정의하려는 성향, ② 과거의 풍부한 신학적 유산을 무시하는 반신조적 · 반역사적 태도, ③ 개인의 선택이 믿음의 결정적 요소라는 주장, ④ 교회를 우연히 같은 것을 믿게된 개인들의 집합으로 보는 원자론적 견해, ⑤ 지적인 성찰보다 사회적 행동을 선호하는 것 등이 그렇다. ⑥ 무엇보다도, 복음주의는 유명인사 중심의 리더십 모델을 여전히 양산하는 것 같다. 기업가 타입의 실용적인 인물, 일부러 청중의 감정을 조종하는 인물, 자화자찬 격의 일화를 늘어놓으면서 자기 이미지를 은근히 높이는 인물, 오만하고 군림하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 성과에 입각해서 성공을 측정하는 인물, 숫자를 늘리기 위해 최첨단의 세속적 기법을 얼마든지 사용하는 인물 등이 거기에 속한다.  [낸시 R. 피어시,『완전한 진리』, pp.497 ~ 500,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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