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정리 안된 생각들 (32)
대웅님의 블로그
[인제 생각을 시작할려고 모아 놓기 시작한다] 1. 아담이 실존 인물이었나? 아담은 최초의 인간은 아니지만 대표로 선택된 것인가? 아담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혹은 처음 인간이 되었을 때) 당시에 유일한 '인간'이었나? 2-1. 만약 맞다고 보면 아담에게는 생물학적 부모가 존재했을까? 2-1-1. 만약 생물학적 부모가 존재했다고 한다면, 아담의 부모는 아담의 행위로 인한 저주의 적용범위에 포함되었을까? 인간의 진화적 탄생과 관련해서, (네안데르탈인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범위는? 아담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인간의 진화적 탄생을 수용한다면,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를 받게 되는 '인간'의 범위는? 다만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와 같이 인간과 유사해 보이는 인간 종들의 존재를 ..
[과신대 기초과정1을 들으면서 한 생각들이다] 1. 진화론과 창조론이 충돌하는 fact에 관한 주장은 무엇인가? 이 논쟁을 다룰 때는 시작부터 이걸 다루면 논의가 급속도로 깔끔하게 전개된다. 근데 대체로 이러지 않는다. 2. 왜 우리는 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3. 자연이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현상은 신을 배제하지 않는다. 4. 인류원리란 여섯개의 상수들에 대한 것이다.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인간이 탄생하기에 적합한 비율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5.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인간의 7일간의 노동에 빗대어 신인동형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6. 오랜지구론이 진화창조론과 다른 점은, 오랜지구론은 생물의 발생이 초자연적이라 보는 반면에, 진화창조론은 자연적으로 일어났..
(1) 개신교는 율법주의에 반대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다만 '율법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사용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정말로 개신교가 반대하는 것이 무엇이고, 반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혹은 반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그리스도인의 행위와 관련해서 많은 오해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참고로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심으로써 거듭나고 죄의 씻음을 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2) 그리스도인이 구체적인 생활 가운데 문제가 되는 논점은 크게 2가지이다. ① 먼저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제 어떠한 행위가 죄인가 아닌가의 관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은가, 혹은 어떤 것을 하는 것은 문..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이 몇가지 있다. 논리적으로 추론될 뿐 별로 궁금하지는 않은 주제들이다. 다만 모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생각나는 것부터 모아두려고 한다. 아마 이 모든것에는 전 우주가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유에서 주지주의에 왕좌를 주어서는 안된다.] 1.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을 즐거워하도록 인간을 만드셔 놓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 모른다. 쾌적한 주거환경, 멋진 외모를 가진 이성, 염려 없는 생활, 건강한 육체, 번영과 형통 이런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혹자는 '사랑하다'에 방점을 둔 명령이라 이해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1. 종교 중립성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개념을 정의하는 것의 어려움은 그 외연을 명료하게 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데,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헌법하에서 반드시 종교로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기독교'다. 2. 나의 주장의 요지는,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여기고 있는 것과 양립불가능한 전제들까지 이때의 종교에 포함시킬 것인지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의 문제는, 무신론과 기독교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을 종교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일상어법상의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가 존재하나, '종교 중립성'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무신론 역시 자제 되어야 할 세계관중 하나에 불과하다. 3. 종교 중립성을 헌법상의 원칙으로..
'하나님 나라'를 최근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갖는 근본적인 의문점은 이것이다. 예컨대 김세윤 교수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경우(D-day와 V-day의 관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의 수가 계속 더 들어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계속 더 확장되어 갈 것인데, 그렇다면 V-day에 이르리 전까지 이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진다는 것인가? 점진적으로 완성의 지점에 이르다는 말인가?
팀 켈러는 『당신을 위한 로마서1』 149~150쪽에서 "구원의 수단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파기되고 무효가 되었을지라도, 율법 자체가 파기되거나 율법의 요구사항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은 여전히 준수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지켜야 한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자신의 완전한 순종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그것을 통해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 따라서 복음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죽음과 심판을 가져올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과 누군가 대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심판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안에서 율법은 파기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워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의문점은 이것이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아 내기 원하시는 삶의 양태를 말한다. 소명과 직업이 서로 구분되는 것이고, 모든 소명이 꼭 직업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소명이 한 사람의 인생의 시기별로 달라질 수도 있다(즉, 복수의 소명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궁금한 것은 ① 칼뱅은 모든 개개인에게 소명이 있다고 보았는가(제랄드 싯처는 그렇게 보았다고 말한다)? ② 칼뱅이 뭐라고 생각했는지와 별개로, 진짜로 모든 개개인에게 (그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는지와 별개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소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③ 하나님도 우리가 개념화하는 '소명'이라는 것을 일종의 실체로서 이해하실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한 것일까?
○ 가난한 사람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이나 가진 사람이나 똑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정당하기도 하고, 부당하기도 하다.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막무가내이고 무례하며 부당하고 경우 없이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내가 권력을 갖는다면 억울한 사람, 원통한 사람,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살 낙이 없는 사람을 어루만지고 고치고 싶다. ○ 국회 각 상임위가 계속해서 입법활동을 한다. 궁금한 점은 왜 그렇게 많은 입법수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국회가 이런 입법활동을 3~4일 멈출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 나는 롤스주의자다. 그러나 이것이 엄격하게 현실에거 구현될 수 없다는 것 쯤은 알 정도의 현실주의자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이익 균..
성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① 그것으로 하나님과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알아 구원을 얻으라고? ② 그것을 열심히 탐구하고 연구하여 거기서부터 원리를 추출하여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여 삶을 그것에 따라 재편성하라고? 로이드 존스는 후자를 너무 중요하게 여겼지만 왠지 나는 성경 자체가 후자를 너무너무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목저긍로 주어진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주어졌다고 한다면, 그 목적을 위해 성경에만 확연한 우월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목적으로 주어진다 하더라도 성경 자체가 그런 목적에 대해 너무 적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