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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7. 1. 23. 07:17

(1) '사명'과 '소명'을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같은 것으로 취급해서 섞어 쓰도록 하겠다. 사명이든 소명이든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하나님이 신자가 이 땅에서 성취해 내기 원하시는 구체적인 과업(課業)' 또는 '하나님이 특정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주신 명령'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만약 소명이나 사명이 이런 의미라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런 것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2) 물론 하나님께서는 정말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을 주신다. 확실히 바울에게는 사명이 주어졌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을 주시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명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런 명령을 주시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이 주어졌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사람은 그것을 죽기 살기로 성취해 내야 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것을 주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과업보다 그 신자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또 그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뜻하시면 0.1초 안에도 다 이루어 내실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사명이 주어진 소수의 사람에 속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단, 이런 의문이 들었다면 당신은 아니다. 사명은 분명하게 주어진다. 그것을 별의별 논리적 근거를 들어 부인해 보려 해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주어진다.


(3) 소명(Berufung) 개념은 루터 당시에 등장했는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의미의 소명과는 다른 것이었다. 당시에는 거룩한 직업과 세속적인 직업을 구분하고, 전자가 후자에 비해 우월하며, 따라서 할 수 있다면 전자의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는 사고가 만연해 있었다. 그런데 루터는 후자도 거룩할 수 있고, 전자에 비해 열등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전자의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명을 개념화(conceptualization)했던 것이다.



(4) 이것은 요즘 소명(내지 사명) 개념이 뜨거운 이유와 다르다. 요즘 계속해서 신자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사명(내지 소명)은 과업중심적이고, 성취중심적인 자유 민주주의 경제 시스템의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제(made in America) 복음'의 한 내용이다. 직업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생긴 개념이다. 보편적으로 모든 신자에게 적용되는 개념이거나, 너무 너무 중요해서 간과할 수 없는 개념이라면, 4세기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난 흑인 여자 어린이 노예한테도 타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최소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개념임이 틀림없다.


(5) 또 이 개념은, 공(公)과 사(私)가 분리되고, 우리가 공(公)의 영역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과 정력을 사용함에 따라, 그 영역을 영적(靈的)이고, 인간의 정(情)이 느껴지는 촉촉한 것으로 채색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아귀가 맞아 유행하게 된 개념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16세기 루터 식의 소명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현대에 끌고 오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6)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 우리의 '존재'가 더 크다. 그리고 우리 '존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과업' 위에 있다.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야만 하는 그런 과업 같은 것은 없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사명 개념은 우리의 존재를 과업에 종속시키는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 것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에 무언가 활동을 하고, 그래서 그 결과로 무언가를 얻어내고 이룩해 내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자본주의식 전제에서 도출된 생각이다. 우리가 반드시 이뤄내지 않으면 안되는 일 같은 것은 없다. 필요하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7) 한편 이것은 다시 '하나님의 뜻' 문제와 맞물리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yyydddwww.tistory.com/147을 참조하시라.

 

(8) 다만 이런 의미에서의 소명은 존재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래의 창조목적과 질서로 되돌아가 참된 인간으로서 살게 하시려는 뜻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따라서 의런 의미에서는 우리가 어떤 미션과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 맞다. 윤리적으로 살고, 선하게 살고, 단정하게 살고, 올바른 가치질서를 참되게 이해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살아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올바로 예배하며 살아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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