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님의 블로그
(1) '바울은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바울이 논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누구보다 논리적이었거나 그의 논리전개가 그 누구보다 더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바울보다 논리적으로 더 탁월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심지어 여기에 추가로 위트와 센스까지 겸비한) 사람들은 바울 이후에도 수두룩하게 많았다. 특히 오늘날 분석철학까지 발전한 시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울의 문장전개는 사실 허접하게 보일 정도다. 이점이 바울에 대한 오해다. 이점을 전제로 바울 서신을 해석하려 하면 설교가 꼬여버린다. 애석하게도 개혁교회 안에 이 오해를 널리 퍼트리신 분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다.
(1) 신정론이 복잡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철학적으로 실재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악의 창시자 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실재론을 전제로 한다.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실재론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악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성을 옹호해 내려고 했기 때문에 꼬인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유명론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악"이라는 것은 어떤 사태에 대한 평가 용어일 뿐이다. (물론 신학자들이 왜 그간 '악'을 단순한 평가용어로 볼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해석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이 부당하다고 평가하는 이 일을..
(1)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현실세계를 살아가다 보니, 기독교 신앙을 견고하게 하고,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조직을 꾸리는 것이 필요하고 또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해왔기 때문에, 경험의 산물로 생겨난 조직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이러한 조직을 꾸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것을 명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은 이런 형태의 모임을 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경험의 결과로 교회를 꾸리게 된 것이 아니라, 명을 받은 대로 만든것이 교회라는 점이다. (2) 따라서 교회의 조직과 구성, 형태와 활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된다. 하나님이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조직을 꾸리도록 명령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