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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님의 블로그
"결국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려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이 아들을 기뻐하니, 너희는 이 아들의 말을 들어라." 1.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권능으로 붙들어 주시고 자신의 섭리로 다스리시며 또한 자신의 선하심으로 보호하시고 온갖 축복으로 채워 주신다고 느끼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제공된 화목의 은혜(gratiam reconciliationis)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성경의 일반적인 교훈(generali scripturae doctrina)이 가르쳐 주고 있는 대로, 우주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단지 자신을 창조주가 되심으로 나타내어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아직 다듬을 부분이 많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하나님이나 교회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이것입니다. 기존의 삶을 그대로 둔채로, 기독교를 거기에 추가로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0. 사람들은 흔히 어느 정도의 종교는 바람직하지만 그것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실제로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 '종교'에 함몰하여 자기 파멸의 길을 걸었고 또 지금도 걷고 있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지금까지는 ① 창조자로서의 신이 있고, ② 그 신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신이라고 믿을 만한 많은 이유들이 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제 이야기하..
[작성 중. 오타도 좀 있고, 다듬어야 할 문장도 많다. 그리고 성경의 신뢰도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이 추가되어야 한다.] 1. 지금까지는 온 세상의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 두 번째 글에서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한 창조자로서의 신을 인정하는 전제 위에 서 있는 사상 체계는, 기독교 외에도 어려 가지가 있는데 '왜 하필 기독교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유대-기독교의 신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 페루 신화, 이집트,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말하는 신은 왜 되지 않는가? 혹은 우리가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신이 진짜 창조자일수는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성경에 대해 다루게 될 것입니다. 기독..
(1) ① 기독교 신앙이 실제로 말하는 바와 ② 우리가 기독교가 말해 주기를 기대하는 내용, ③ 그리고 우리 자신의 견해, ④ 그리고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그럴 듯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명확히 구분하고 그 구분을 유지하면, 청중은 과학자가 실험 결과에 매여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료에 매여 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가 그저 좋아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어떤 이상이나 관점에 대한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질문을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C. S. 루이스,『피고석의 하나님』, pp.109 ~ 110] (2)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믿지 않는 수많은 동표들은 기독교를, 부흥사들이 제시하는 대단히 감정적인 ..
(1) 모더니즘의 중심 사상에는 자기 결정(self-definition)이라는 완전한 자율성을 찾으려는 열망이 있다. 자기결정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가리키는 용어다. … 케임브리지 대학의 신학자 돈 큐피트(Don Cupitt)는 "현대인은 자신의 삶을 살기 원한다. 이는 자신의 규칙을 만들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통해 인생 항로를 조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권위 혹은 선택의 제한이라는 개념은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근대성은 자신의 현실을 자유롭게 구성하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본성과 목적에 관한 논의에서 지적인 선택이 외부의 규범에 의해서 제한받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사상은 자율과 자생 그리고 자기 확증 등을 강조하는 세계관과 갈등할 수 밖..
그러나 기도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도에는 당연히 훈련의 요소가 포함되지만, 그 본질상 훈련의 측면에서만 다룰 수는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번에도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하고 싶은 바는, 기도의 영역에서도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 영성이 깊지 못하다는 표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침에는 종종 기도를 시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기꺼이 고백하는 바입니다. 제가 개인 기도에 대해 배운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무조건 명령한다고 해서 기도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무릎은 꿇게 할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도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알게 된 바는,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마련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
[모아 두고 깊이 생각해 본 후 차차 정리하겠습니다. 사실 3번 의문점이 사활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부분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에 대한 주장, 판단, 결론은 난무하지만, 납득할만한(apologetical) 설명,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정리가 된다면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 중 가장 중요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들어 있는 이 모든 책만을 우리 믿음의 토대이자, 우리 믿음을 규정하고 확증해 주는 거룩한 정경으로서 인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의심 없이 믿는다. 그것은 교회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① 성령께서 친히 우리 마음속에 그것..
(1) 왜 이번 기도에는 응답하시고, 저번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셨을까?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의 비유를 들어 이것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경우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다가도 모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분명하게 붙들어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아뢸 것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왜 요구하셨을까? 혹시 아뢰면 주시려고 요구하셨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니 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런 최소한의 기대를 가질 수는 있다. 이 최소한의 기대라도 있으면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아뢸 수 있다. 다 아뢴 후..
[詳論(상론)하면 재밌는 것이 많은데, 일단 급한대로 정리했다.] 1. 그리스도인은 '기도'라는 것을 해야 하는가? ☞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가지고 당신께 나올 것을 요구하신다. 2. '기도'란 무엇인가? ☞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3.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기도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늘 잊어버리기 잘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신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에게 주기 즐겨하시며, 그럴만한 능력이 있으시고, 바랄만한 분이시며, 그 품에 안기는 것 자체가 좋은 것임을 우리에게 알게하기 위해 기도를 제정하셨다. 그러나 이 때 주의할 것은 우리가 미쳐 아뢰지 못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좋은 것..
[적극적인 비판과 반론을 환영합니다. 내용에 대한 오해나 추가하면 좋을 사항들에 대한 지적도 환영합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환영합니다.] Ⅰ. 서론 1. 들어가는 말 ① "이 대립은, 사람인 우리가,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고 사람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계시(啓示)하기를 기뻐하셨으므로 인간에게는 이를 탐구해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있다." ②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인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해석의 기본이다." 2. 논점의 정리 넓은 의미의 아르미니우스주의(이하 AM이라 함)는 넓은 의미의 칼빈주의(이하 CV라 함)에서 갈라져 나온 입장이다. AM이 C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