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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님의 블로그
https://www.youtube.com/user/shinhakpunch/community 에서 퍼왔습니다.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 - 김재준 목사, 「십자군」 ,1950년 3월호 1. 성서가 하나님의 영이 감동함으로 말미암아 된 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 영감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함인가 하는 데 있어서는 모름지기 겸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최대한으로 활동하고 사람은 최소한으로 활동하는 경우에 영감은 더 커진다고 믿는 것이 보통 민속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영감이란 것은 그 영감을 받는 사람이 아주 기계처럼 되어서 자기 의식까지 잃어버리고 접신(接神)하였다는 무당같이 되는 것을 말함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소위 축자영감설이 생겨난 것이니 이것이 과연..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사회과학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도 일면 타당한 부분과, 타면 부당한 부분을 함께 갖고 있다. 페미니즘의 본류는 여성을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데 있다. 예컨대,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사람을 고용할 때 그 사람이 회사에 수익을 얼마나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혹은 얼마나 그 직무에 적합한지만을 보아야 하지, 그 사람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때문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역으로 그 사람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때문에, 그 회사의 수익창출이나 직무적합성에 영향이 있다면 그로 인한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직선거에 대한 투표에 있어서 불이익이 가해져서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
정의란 국가의 재화나 용역 등 가치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 즉, 국가공동체의 가치 분배에서 자의적인 불평등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는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국가의 가치를 형식적으로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정한 가치 분배란 자신이 기여한 만큼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며 사회주의에서도 동일하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자본과 관련해 '기여한 만큼'에 대한 해석을 자본주의와 달리 이해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생산 요소로 토지, 자본, 노동을 드는데, 그 중 자본에 대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통해 얻은 수익을 개인이 경제활동에 기여한 만큼의 결과로 본..
순전히 법리적 관점에서 평석을 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은 셋(4:3:2)으로 갈렸는데, 그 결과 유남석, 서기석, 이선애, 이영진 4명의 재판관들의 의견이 헌법재판소의 법정의견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심판대상 조항이 된 형법 269조 제1항 자기낙태죄 조항과, 형법 제270조 제1항의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하면서 2021년 1월 1일까지 입법개선시한을 두었다. 이들이 결론적으로 문제삼았던 것은, 위 두 조항이 ① 임신기간에 관계 없이 일률적인 처벌을 하고 있다는 점, ②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낙태의 원인은 임신한 여성의 사회적 · 경제적 상황 때문인데, 이들을 고려하지 않고 처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동 규정들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헌법..
어려운 주제이다. 다만 아담의 역사성이라는 논점에 대한 견해를 구성할 때 그 견해는 다음의 사항에 대한 다답을 반드시 담고 있어야 한다. ① 현존하는 모든 인류의 생물학적 시조이며 ② 대략 6000년 전에 존재했고 ③ 대략 900년을 넘게 살았으며 ④ 선악과라는 이름을 가진 열매를 실제로 따서 먹음으로써 저주를 받게 되었고, ⑤ 에덴이라는 지구상의 어떤 지역에서 또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게 된 ⑥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실재했었다고 보는가? 또 아담의 역사성이라는 논점에 대한 견해를 구성할 때는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① 히브리어로 '아담'은 단순히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 보통명사이다. ②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분명히 창세기의 아담에 대한 기록이 사실임을 전제로 논증을 전..
그는 먼저 용어를 정의하고, (흔히 이분법적) 대안들을 제시하며, 청중의 반론이 갖는 합리성에 공감한 다음, 기독교적 대안의 이성적 우월성을 제시하되 그 대안을 상상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 모두에서 호소력 있게 만든다. [조지 M. 마즈던,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전기』, 215쪽]
(1) '바울은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바울이 논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바울이 다른 누구보다 논리적이었거나 그의 논리전개가 그 누구보다 더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바울보다 논리적으로 더 탁월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심지어 여기에 추가로 위트와 센스까지 겸비한) 사람들은 바울 이후에도 수두룩하게 많았다. 특히 오늘날 분석철학까지 발전한 시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울의 문장전개는 사실 허접하게 보일 정도다. 이점이 바울에 대한 오해다. 이점을 전제로 바울 서신을 해석하려 하면 설교가 꼬여버린다. 애석하게도 개혁교회 안에 이 오해를 널리 퍼트리신 분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다.
(1) 신정론이 복잡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철학적으로 실재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악의 창시자 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실재론을 전제로 한다.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실재론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악의 창시자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성을 옹호해 내려고 했기 때문에 꼬인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유명론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악"이라는 것은 어떤 사태에 대한 평가 용어일 뿐이다. (물론 신학자들이 왜 그간 '악'을 단순한 평가용어로 볼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해석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이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이 부당하다고 평가하는 이 일을..
(1)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현실세계를 살아가다 보니, 기독교 신앙을 견고하게 하고,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조직을 꾸리는 것이 필요하고 또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해왔기 때문에, 경험의 산물로 생겨난 조직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이러한 조직을 꾸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것을 명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은 이런 형태의 모임을 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긴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경험의 결과로 교회를 꾸리게 된 것이 아니라, 명을 받은 대로 만든것이 교회라는 점이다. (2) 따라서 교회의 조직과 구성, 형태와 활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된다. 하나님이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조직을 꾸리도록 명령을 ..
[초안임](1) 공로주의(meritocracy)란 세운 공로(功勞)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말한다. 공로주의는 다음의 의미를 함축한다. ① (2) 문제는 더 적은 공로를 세운 사람과 더 많은 공로를 세운 사람이 동일한 보상을 받게 하면 부들거리는 일 (3)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보상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가능한 공로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4) 일의 되어짐고 성취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떤 수고나 노력이 있고 그건을 원인으로 해서 결실을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그 어떤 수고나 그 어떤 노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이라고 생각되는 보상을 절대적으로 요구할 수 있을 만한 수고나 노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