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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론

기도의 어려움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21:03

(1) 왜 이번 기도에는 응답하시고, 저번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셨을까?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의 비유를 들어 이것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경우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다가도 모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분명하게 붙들어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아뢸 것을 요구받았다는 것이다. 왜 요구하셨을까? 혹시 아뢰면 주시려고 요구하셨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니 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구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이런 최소한의 기대를 가질 수는 있다. 

  이 최소한의 기대라도 있으면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아뢸 수 있다. 다 아뢴 후에는 다시 마음을 모아 진지하게 다시 아뢸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또 아뢸 수 있다. 이렇게 열렬한 기도가 되어간다.

  이때 우리의 마음 안에는 믿음과 의심이 계속 씨름을 벌인다. 의심의 내용은 이것이다. '이렇게 아뢴다고 해서 100% 허락해주시는 것도 아니고, 잘 생각해보면 응답해 주시는 통계적 비율도 꽤 낮다. 그럼 왜 아뢰지? 에이 모르겠다. 기도한다고 해서 허락해주시는 것도 아니네 그럼. 이쯤하고 그만두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하기는 했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것이다.

  믿음의 내용은, '그래도 아뢰라고 하신 것은 뭔가 주시려고 하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렇게 반복해서 아뢰는 동안 내 마음이 진짜 진지하고 진실했는데, 주실 지도 몰라. 경험상 이렇게 기도할 때는 뭔가 내가 구한대로는 아니더라도 뭔가 주셨었어. ① 이 진지한 마음이 나한테서 온 건지 하나님 한테서 온 건지, ② 또 내가 간절했기 때문에 기도가 된 건지 기도하다 보니 간절해진 건지 그 헷갈리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일단 확실한 것은 지금 내 안에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과 필요하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야. 그리고 요구하신 대로 그 원하는 것과 필요를 아뢰었으니, 뭔가 주실 거야.' 하는 마음이다.

  결국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대가 사라지지 않게 하시는 은혜가 아닐까 한다. 더 정확히는 기대가 있게 하시는 은혜다. 어쩌면 이것이 기도의 거의 모든 것이 아닐까 한다. 의심하자면 이 모든 짓거리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혹은 해봐야 별차이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만한 합리적인 이유들은 넘쳐난다.

(2) 기도하면서 우리가 씨름하는 문제는 따로 있지 않은가? ① 낮은 수준에서나마 믿음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씨름, ②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실 수 있든 없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것을 참작하실 거라고 믿기 위한 씨름, ③ 심지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있음을 믿는 일에도 끊임없는 씨름이 필요하네. 상황이 절박해질수록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파고들기 때문일세. 내가 텅 빈 우주 속에서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론 침묵이 너무 완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네. [C. S. 루이스, 『개인기도』]


(3) 그래, 어찌됐든 지금 솔직하게 털어놓자구. 기도는 분명 귀찮네. 기회만 생기면 얼시구나 하고 기도를 빼먹게 되고, 기도를 마치면 할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남은 하루를 감싸지. 기도를 시작하기 전까지 있는 대로 몸을 뒤로 빼다가, 기도를 마치면 기뻐하네. 소설을 읽거나 십자말풀이를 할 때와는 달리, 기도 시간에는 사소한 일에도 주의가 흐트러지네. 물론 우리만 그런건 아니야.
  … 이상하게도 영적으로 무미건조한 시기에만 기도하가 힘든 건 아닐세. 어제의 기도 속에 위로와 기쁨이 넘쳤어도, 오늘의 기도는 여전히 어느 정도 부담스럽게 마련일세.
  걱정스러운 건 우리가 기도의 의무를 거북하게 여기고 꺼린다는 사실만이 아닐세. 정말 거북한 것은 기도가 의무로 꼽혀야 한다는 사실 자체야.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기"위해 창조되었다고 믿기 때문일세. 그런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에 쓰는 몇 분, 단 몇 분을 기쁨이 아니라 부담으로 느낀다면 어찌해야 하겠나?
  … 우리가 기도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교사의 지적에 따르면, 그것은 상당 부분 우리의 죄 때문이네. 또 세상일에 불필요하게 몰두하는 것, 정신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불건전한 두려움'도 빼놓을 수 없네. 우리는 하나님과의 지나치게 적나라한 접촉을 꺼리네.
  … 오늘 경건한 기분이 들건 아니건 나는 기도를 해야 하네.
  … 실제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가 드린 최악의 기도가 최선의 것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니까 경건의 느낌이 조금도 없고 전혀 내키지 않는데도 억지로 드리는 기도 말일세. [C. S. 루이스, 『개인기도』]

(4) 실제로는 마음이 B에 대한 소원으로 가득 차 있는데 허울뿐인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A를 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지. 우리는 우리 속에 있어야 마땅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하네.
  … 본질적으로는 죄가 아니지만 그 대상의 가치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원할 경우 죄가 되는 소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기도할 때 빠뜨려선 안 되네.
  … 그런 소원을 기도에서 억지로 빼 버린다면, 나머지 기도는 전부 엉망이 되지 않겠나? 모든 것을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나침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도우실 걸세. 반면에 우리가 무언가를 떨쳐 내려고 노력할 수록 그것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주의를 절망적으로 흩어 놓지. 누군가가 한 말도 있지 않나."듣지 않으려고 애쓰는 소음만큼 크게 들리는 소리도 없다."균형 잡힌 마음 상태는 기도로 구해야 할 축복 중 하나이지 기도할 때 입어야 하는 멋진 의상이 아니라네.
  그리고 작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큰 시련이 닥칠 때 도움이 될 습관이나 방책을 익히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께 유치한 것들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큰 것도 구하지 못할 걸세. 지나치게 고상해서는 안 되네. 때로 우리가 작은 일들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체면 때문일 듯 싶네. [C. S. 루이스, 『개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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