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님의 블로그
솔직한 감정들을 기도하기 본문
(1) 염두에 둘 것은, 하나님은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의 생활의 극히 세세한 부분에까지 집요한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는 점이다. 하나님이나 어떤 성경적 진리로 인해 혼란스러운가? 주변 인물들의 불의와 위선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그러한 문제들을 그분과 나누기 원하신다. 그것들을 하나님께 아뢸 때, 당신은 사소한 문젯거리들까지도 함께 공감하시며 그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자상함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므로 그분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당신의 개인적인 요구사항들을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신다. 그리고 당신이 그것들을 그분께 간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우리 집 아이들이 나한테 와서 용돈을 달라고 조르거나 동화책 읽어 달라고 보채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있다. 아이들이 나를 찾지 않을 때 오히려 섭섭한 것이다. 당신이 그러한 소원들을 구체적으로 마음에 떠올리기 전에 하나님이 그것들을 구하도록 미리 당신을 고무시키신 것이다. 마음속의 갈망을 하나님게 숨기지 않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주님, 저는 정말 그 논문이 A학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제게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이 언제나 허락해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모든 것을 나누기를 고대하신다(시 103 : 13) [존 화이트,『기도』, pp.16, 19 ~ 20]
(2) 기도할 때 생각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얼마나 중요한 필요나 소원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기도거리가 될까 하는 것이다. 우리 안의 덕목이 비뚤어져 있다면 어떻까? 실제로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면서 하나님께 고상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우리는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께 열어 보여야 한다. 루이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이 곧 기도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회개가 됐건, 청원이 됐건, 아니면 둘 다 이건, 적절한 관심사들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지 관심도 없는 내용으로 가장된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 루이스는 고상한 종교가 덫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때로 작은 일들을 놓고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체면 때문일 듯싶네." [캐스린 린즈쿡,『C.S.루이스와 기독교 세계로』, pp.209 ~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