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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론

하나님에 대한 이해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6. 10:55

  원하는 것을 주시거나 주지 않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한 평안은 없다. 간절히 매달리면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있는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평안은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시거나 못하게 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경우에도 평안은 없다. 하나님과 나의 이해관계를 대립되는 구도로 파악하고 있는 경우에도 평안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와 이해관계의 대립을 이루시느라 하루를 보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계획과 소원들을 포기하게 만드시는 것을 주업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원과 인생에 대한 계획이 하나님의 그것과 일치하는 지를 날마다 감찰하시고, 일치하지 않을 경우 그것을 무마시키는 일을 주업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시는 일이 이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주업 삼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속에서 무엇을 뜻하고 계시는가 우리의 염려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든 나도 그것을 기뻐할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무엇이 되든 걱정 없어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관계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가진 인생에 대한 모든 계획을 내려 놓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이것을 수도사의 자기 수련이나 연단의 한 방편으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이 통하는 분이다. 싫으면 싫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내키지 않으면 내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한다.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내면의 어떤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면의 어떤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인간이 어린 시절부터 양육자와의 관계 가운데 형성하게 되는 타락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때의 타락은 부모의 타락과 자녀의 타락을 모두 말한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감추고 싶은 것이 생겼다. 하나님이 모르셨으면 좋겠고, 하나님이 관계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영역이 생겨났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확트인 교통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영혼의 모든 속살을 다 꺼내어 놓는 관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깊은 내면의 은밀한 영역까지 내어 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애하심이 우리의 매일을 전방위에서 둘러싸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사라지면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궁리를 하게 된다.
  자신을 하나님과 독립된 어떤 이해관계의 주체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나는 한 배를 같이 타고 있는, 생사를 같이 하고 있는,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는, 하나의 전대(纏帶)를 차고 있는 관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또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날마다 우리의 것이 아닌 것을 베푸시는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날마다 주신다! 우리 것이 아닌 무언가를 날마다 주신다! 우리의 몫을 주시기도 하고 가져가기도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날마다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원하는 '그것'을 주지 않으실까봐 근심한다! 그것을 주지 않으실까봐 딴 살림을 차린다! 나의 정직한 모든 것을 다 공개했다가는 '그것'을 주시 않으실까봐 하나님 앞에 무언가를 숨긴다!
  하나님과 우리는 가족 관계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자녀다. 이 관계는 가족관계다. 이것을 무언가를 주거나 받는데 주된 목적이 있는 관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탄 한 가족이다. 이 관계를 경제적 이해관계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또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서 바꾸어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관계를 맺어 주시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이해하면 계속 무언가 어긋나는 일이 발생할 것이고, 또 평안도 없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신다고 불평한다. '은혜'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벌써 망각한 것이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악인에게 자비를 베푸신다고 불평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본래 우리의 처지가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망각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대해 언제나 뜻하시는 것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이 뜻은 창조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뜻이다. 흔들릴 수 없고, 흔들 수도 없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이것에 해를 끼치는 것이거나, 방해를 준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갈등을 겪어야 한다. 그러므로 프란시스회 수도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생에 대한 우리의 모든 계획을 내려 놓고, 유쾌한 거지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는 쪽을 택해야 한다.
  프란시스회 수도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에 대한 이해를 조금 적어보자. ① 인생에 대한 모든 계획을 내려 놓는다. ② 인생에서 내가 당연히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기대를 내려 놓는다. 모두 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시는 분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③ 무언가 좋은 것이 주어지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기뻐한다. ④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감사한다. ⑤ 내일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아니하시겠느뇨"(롬 8:32)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 지 않겠느냐"(마 7: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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