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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적 윤리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11. 24. 10:49
1.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욕구와 관심사를 가진 평범한 다양한 자아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 자아와 다른 무언가 ― '도덕'이나 '바른 행동'이나 '사회적 안녕' ― 가 이 자아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점, 즉 자아의 욕구에 간섭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요. '선량하다'는 것은 그 권리 주장에 승복한다는 뜻입니다. 평범한 자아가 이른바 '그릇된' 것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아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평범한 자아는 이른바 '옳은' 일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요구들을 다 채우고 난 후에 이 불쌍한 자연적 자아에게도 얼마간의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삶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를테면 정직한 납세자의 심정과 아주 비슷한 것입니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긴 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한 돈은 남기를 바라 마지않는 납세자의 심정 말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자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한, 그 결과는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즉 선량해지기를 포기하게 되든지, 아주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자, 보십시오. 자연적 자아에 대한 양심의 요구를 다 충족시키려다 보면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양심은 따르면 따를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처럼 매번 굶주리고 구속받으며 괴롭힘을 당하다 보면, 자연적 자아도 점점 더 화가 나겠지요. 그래서 결국 선량해지기를 포기하든지, 늘 불만에 싸여 투덜거리면서 이른바 '남을 위해 사는' 사람 ― 자신을 마치 순교자처럼 생각하면서 남들이 이런 희생을 왜 항상, 또 좀 더 몰라주는지 이상히 여기는 사람 ― 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솔직한 이기주의자보다 함께 살기가 훨씬 더 힘든 골칫거리가 되어 버립니다. … 지금 우리가 애쓰고 있는 일은 이른바 '자아'를 지키면서 개인의 행복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삼는 동시에 '선량'해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은 제멋대로 굴게 내버려 두면서 ― 돈이나 쾌락이나 야망에 빠지게 내버려 두면서 ― 동시에 정직하고 순결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C. S. 루이스,『순전한 기독교』, pp.296 ~ 300]

2. 현대인들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사이의 경계선은 사라졌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뿐이며, 해당 시점에서 사회가 용인해주는지가 도덕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프랜시스 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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