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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론

계시와 교리의 발전성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17:08

(1)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서 역사 가운데 자기를 조금씩 더 계시하셨습니다. 모든 계시를 한 번에 다 알리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점진적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성경에는 계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 : 1-2이 이 점에서 중요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구약 성경 안에서도 계시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6 : 3을 봅시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

  … 여기서 또 다른 두 신학자를 인용하여 보겠습니다. 그들은 계시의 역사라는 개념을 '빛이 점차 밝아지는 것'과 '조각상'에 빗대어 멋지게 설명하였습니다. 먼저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제2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3 : 15에서 아담에게 구원의 약속이 처음 주어졌을 때 가느다란 섬광 몇 가닥이 흘러나오는 정도였지만, 그 섬광들은 점차 수를 더하였고 빛은 점점 더 강하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계속하여 커진 빛은 점점 밝게 빛나더니, 결국에는 모든 구름이 걷히고 '의로운 해'이진 그리스도께서 떠올라서 충만한 광채로 땅을 비추었다"(10장 20항). 네덜란드의 구약학자 중에 테오도르 프리젠(Theodor Vrizen)이라는 사람은 이것을 그의 『구약신학 개요』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마치 예술가가 다루기 힘든 재료를 인내심을 가지고 끌과 정으로 작업해서 처음엔 볼품없던 돌덩어리가 점차 모양을 갖추어 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계속 일하여 오셨다. 그런데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은 마치 로뎅의 조각에서 작품이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원재료와 공존하여 있는 것과 같다. 반면 신약에서는 원재료가 모두 다듬어져서 완성된 형태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우하여 사람에 대하여 가졌던 구상인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페일스(H. G. L. Peels),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p.17]

 

(2) 계시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구약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계시의 역사를 파악함으로써,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구약과 신약의 모든 본문들을 동일한 하나의 기준선 상에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약 이전의 계시 기록에서는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명료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계시하실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던 견해와 인식들을 사용하십니다. 칼빈은 이것을 '적응'(Accomodation,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심)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시대의 개념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 개념들에 '세례를 주신다'고 표현해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신 후에 후대에 이르러 그것들에 대한 더욱 큰 통찰을 주시는 것입니다. [페일스(H. G. L. Peels),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pp.28 ~ 31]

 

(3) 교리들은 무오하지는 않지만, 고도의 안정성을 지닌다. 그 교리들이 권위가 있는 것은 단지 그것들이 교회에 의해서 제시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의해서 정의되었고, 내용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교회는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표현이기 때문에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교리는 교회의 보배로운 자산들을 미래의 세대들에게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승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 개신교 신학이 한결 같이 지켜온 입장은 교회의 교리는 고도의 안정성을 특징으로 하지만 변화될 수 있고, 실제로 역사 과정 속에서 새로운 요소들을 통하여 풍부해져 왔으며, 좀 더 세심한 표현을 부여받았고, 어느 정도 실질적인 변형조차도 겪어 왔다는 것이다. … 교회 자체도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종종 진리를 정형화함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된 흐름에 있어서는 중단 없는 성장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모형적인(ectypal) 지식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구속이라는 사상을 점진적으로 펼처 보이고 있는 것이다. …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에서 그 일을 행하는데,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진리를 내적으로 서로 연결된 유기체로 점점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 우리는 교회가 진리를 추구하다가 암울한 탈선들을 겪어서 잘못된 길들로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한 이해와 정형화에 있어서 점진적인 진보를 이루어왔다는 전제 위에서 이 작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루이스 벌코프,『기독교 교리사』, pp.16 ~ 22]

 

(4)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시의 도움을 통해 인간의 지성으로서는 추측하여 알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을 알지 않고는 결코 인간이 자신이 창조된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 계시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만큼 성경의 형태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계시의 특별한 형태입니다. … 성경 계시에 대한 지식은 어느 한 순간 확장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매일 성경을 대하는 진리의 추구와 함께 역사적으로 그 결과물들을 집적해 온 신앙고백의 전통이 녹아 있습니다. 그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우리는, 주관적으로 성경을 대하면서도 그 주관적인 해석과 체험이 진리를 이탈하지 않기 위하여 신앙고백의 전통을 통해 그것의 그릇됨과 올바름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를 안다는 것은 성경 자체에 대한 지식과 성경 진리에 대한 역사적 고백을 함께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한 편으로는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헌신하여 성경의 진리를 파수하고 또 한 편으로는 역사적으로 발전하여 온 계시에 대한 신앙고백에 자신들의 참된 고백을 더하여야 합니다. … 성경의 궁극적인 해석자는 성령이시므로 어느 성경 연구가이든지 성령을 떠나 성경을 올바르고 풍부하게 해석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의 지성과 의지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지성을 밝히시고, 이성의 추론이 순전하게 되도록 도우심으로써 성경의 의미를 드러내십니다. … 교회는 성경의 진리 위에 서 있는 공동체이지 성경 진리를 만들어 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본래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지성의 탐구와 성령의 감화 안에서 발견해 가는 겸손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함께 하시는 성령과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심으로써 교회가 그 빛에 참여하고 또한 그 교회가 모든 사람에게 빛으로 드러나게 하시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십니다. … 성경의 진리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교회가 성경을 해석해 왔어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진리의 빛이 성경 속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마치 보화를 담은 광산이 탐광(探鑛)을 기다리듯이 교회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할 수 있는 한, 성경을 올바르고 풍부하게 해석하려는 노력으로 경주하여야 합니다. [김남준,『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 pp.185 ~ 188]

 

(5) 주께서는 자비의 언약을 시행하실 때에 다음과 같은 계획을 질서 있게 유지하셨다. 즉 시간이 흘러 완전한 계시의 날(plenam exhibitionem)이 가까워 올수록 주께서는 매일 그 계시(revelationis)를 더욱더 밝게 나타내셨다. 맨 처음 구원의 첫 약속(priam salutis promissio)이 아담에게 주어졌을 때(창 3:15), 그 계시는 약한 불꽃처럼 희미하게 비쳤다. 그 다음에 그 불꽃에 덧붙여져서 더욱더 빛이 강해지고 그 광채를 더 넓게 비추게 했다. 마침내 모든 구름이 다 흩어지고 의의 태양(sol iustitiae)이신 그리스도께서 온 땅에 충만히 빛을 비추셨다(참고. 말 4장). [존 칼빈,『기독교 강요2』, 기독교문사 刊, pp.364 ~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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