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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론

구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19:5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 이니라"(롬 15:4)


(1)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서 역사 가운데 자기를 조금씩 더 계시하셨습니다. 모든 계시를 한 번에 다 알리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점진적으로 계시하셨기 때문에, 성경에는 계시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 : 1-2이 이 점에서 중요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구약 성경 안에서도 계시가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암시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6 : 3을 봅시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
  … 여기서 또 다른 두 신학자를 인용하여 보겠습니다. 그들은 계시의 역사라는 개념을 '빛이 점차 밝아지는 것'과 '조각상'에 빗대어 멋지게 설명하였습니다. 먼저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제2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3 : 15에서 아담에게 구원의 약속이 처음 주어졌을 때 가느다란 섬광 몇 가닥이 흘러나오는 정도였지만, 그 섬광들은 점차 수를 더하였고 빛은 점점 더 강하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계속하여 커진 빛은 점점 밝게 빛나더니, 결국에는 모든 구름이 걷히고 '의로운 해'이진 그리스도께서 떠올라서 충만한 광채로 땅을 비추었다"(10장 20항). 네덜란드의 구약학자 중에 테오도르 프리젠(Theodor Vrizen)이라는 사람은 이것을 그의 『구약신학 개요』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마치 예술가가 다루기 힘든 재료를 인내심을 가지고 끌과 정으로 작업해서 처음엔 볼품없던 돌덩어리가 점차 모양을 갖추어 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계속 일하여 오셨다. 그런데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역은 마치 로뎅의 조각에서 작품이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원재료와 공존하여 있는 것과 같다. 반면 신약에서는 원재료가 모두 다듬어져서 완성된 형태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우하여 사람에 대하여 가졌던 구상인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페일스(H. G. L. Peels),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p.17]

(2) 계시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구약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계시의 역사를 파악함으로써,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구약과 신약의 모든 본문들을 동일한 하나의 기준선 상에 놓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약 이전의 계시 기록에서는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명료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계시하실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던 견해와 인식들을 사용하십니다. 칼빈은 이것을 '적응'(Accomodation,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심)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시대의 개념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 개념들에 '세례를 주신다'고 표현해 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신 후에 후대에 이르러 그것들에 대한 더욱 큰 통찰을 주시는 것입니다. [페일스(H. G. L. Peels),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pp.28 ~ 31]

(3) 구약 성경은 기독론(基督論 Christology)적인 여과장치 혹은 프리즘을 통해 읽혀지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구약 성경의 지면 위에 펼쳐진 제의적 법률(cultic law)을 실행하려고 하지 않고 또한 결코 실행해 오지도 않았다. [앨리스터 맥그래스, 『도킨스의 망상』(Dawkins Delusion?)]

(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벗겨지는 것이다." [바른성경 고린도후서 3장 14절]

(5) "이 책은 한 권이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르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것은 한 권의 책이다. … 66개의 부분을 가진 한 권의 책이다. 그 안에 한 가지 주제와 한 가지 메시지를 갖고 있는 단 한 권의 책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인간은, 이 세상을 그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신 분은 바로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요, 온 열방들의 주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 다른 신이 아닌 바로 이 하나님 ―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에서 일어난 모든 위대한 각성들은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의 존엄성을 깨닫고 경외심을 갖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선행된 두려움에 의해 그 길이 예비된 사랑과 믿음 속에서 그 각성은 극에 달했다." - W. G. T. Shedd
  모리슨은 구약은 "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을 상쇄하기 위해 보존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복음 속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찾아오시므로, 예수님의 사랑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형제처럼 다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만 깨달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잊어버린 채 하나님과 친숙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보는 것은 바로 이 영화로우신 하나님과 죄 가운데 빠진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진리야말로 주요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구약 역사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구약은 그것이 개인에 관한 이야기든 나라에 관한 이야기든 결국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한 목소리로 인간이 존재한 모든 역사는 약함과 실패와 사망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시 낙원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그 목적을 절대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궁극적인 화평을 소망하지만 그 소망을 절대 이루지 못할 것이다. 성령께서 성경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설교자의 소명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이 성경 속에서 왕과 백성들에 대해 적힌 이 모든 이야기를 보고 이게 다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그 모든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능력과 권능과 통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성경은 하나님이 만유 위에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만유 위에 계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기쁘게 용납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순복시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사람은 조만간 그렇게 하도록 강요를 받게 될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구약에 나오는 심판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랑인지를 충분히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복음의 모든 본질적인 요소들이 구약의 계시 속에 나타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중생을 오직 신약 시대에만 국한된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생각으로 간주했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구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우리 마음에 심어 주기 위해 애쓰고 있는 근본적인 법칙을 설명하고 증명해 보이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 성경의 역사서들 속에는 열왕이나 왕자, 장군이나 위대한 인물들에 관한 모든 이야기와 전기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역사서 전체의 요점은 그 법칙을 보여 준 다음 그 법칙이 실제로 얼마나 완벽하게 그대로 역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역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역사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법은 실제의 삶 속에서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 그 사실들과 역사는 그 근본적인 원리를 설명해 주는 예에 불과합니다. 그 근본적인 원리란 심지어 왕과 왕자라해도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었느냐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점은 제외하면 그들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책의 메시지는 정말 하나뿐입니다. 이 책은 신구약 둘로 되어 있지만 한 권의 책이요 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정말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한 가지란 바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책입니다. … 성경은 이론적인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있는 바로 그 자리로 찾아와 우리가 당하고 있는그 고통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해 줄 뿐 아니라, 우리가 이런 모든 고통들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해 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신약에서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신약과 구약 사이에는 오직 한 가지 차이점 밖에 없는데, 그것은 메시지가 제시되고 있는 형식입니다. 즉 구약은 모형, 앞으로 올 일들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실체를 알려 주는 그림자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그 위대한 일 자체가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구약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이안 머리,『구약을 사용한 복음 설교』 서문]


(6) 구약성경에서 말하던 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임을 신약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왜 중요 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따라 나온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항상 사도들과 나 사이에, 이 전제적 지식에서 차이가 남을 느낀다.

(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으니, 성경은 능히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디모데후서 3:15) 구약성경은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끈다.

(8) 이스라엘 이야기 없이는 예수가 누구이고 그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 그들은 세상에서 유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빛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 역시 이 임무를 대단히 혼란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그렇게 하기 위해 애쓰지만, 항상 무언가를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그들에게로 오고, 그들을 통해 세상에 전파됩니다.  [톰 라이트]


(9) 구약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가 오늘날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첫째로 구약 성경의 '높이'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은 신약에서보다 하나님의 높이 계심을 더욱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위대한 왕이시고, 세상을 재판하시는 분이며, 크고 두려우신 주님입니다. 그분은 엄위하시고, 측량할 수 없으시며, 그 능력과 존귀가 조금도 손상됨이 없이 행하십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모세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로 신발을 벗고 그분 앞에 섭니다. 이사야처럼 우리는 우리의 입술이 불결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욥처럼 우리 입술을 손으로 가리게 됩니다.
  둘째는, 구약을 통하여 주신 계시의 '깊이'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깊은 데까지 파고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호세아와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을 비롯하여 구약의 어려 곳에서 그 사랑이 혼인이나 아버지의 사랑에 비유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내로 삼으십니다. 이스라엘에 여러 차례 간음을 행하였지만, 이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비 혹은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그 품에 안고 먹이며 걸음마를 가르치셨습니다(호세아 11장). 또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를 얼마나 깊은 데까지 파고들어 가는지 모릅니다! 이 진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파괴하거나 그분의 거룩하심을 더럽히거나 그분의 백성을 공격한 것에 대하여 참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두려운 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암흑과도 같은 상황을 그냥 두시 않으시고, 거기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와 창조 세계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조롱받고 계실 수 없으십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심판을 선포하심으로써, 그분은 사람들을 회개와 생명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사랑이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구약에서 주신 하나님의 계시는 그 '넓이' 때문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 나라와 화해와 구속이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나팔 소리에 집중하지만, 구약 성경은 더 넓은 시각에서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봅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 곧 정부와 경제, 정치, 성적인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 위로 구약 성경의 빛이 훑고 지나갑니다. 주 하나님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넷째로, 구약 성경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는 그 '길이' 때문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구약은 구원과 심판이 반복되는 긴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에 대한 구약의 기록들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열방의 역사들 가운데 행하시는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오래 참으심과 특히 신실하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점차 알아갑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것들을 지키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세대를 이어가며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가운데, 또한 다함이 없이 우리에게 반응하시고 우리를 보존하시는 가운데 그리 하십니다. 그렇게 구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길과 행하심을 듣습니다. 그 긴 여정을 듣는 동안 우리는 원대한 믿음과 소망을 품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그려 주는 그 '높이'는 우리로 스스로를 높이지 않도록 하여 줍니다. 도리어 우리를 가르쳐 그분 앞에 합당하게 무릎을 꿇는 방법을 말하여 줍니다. 구약의 '깊이'는 우리가 값싼 은혜에 속지 않도록 하여줍니다. 그 대신에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구약의 '넓이'는 우리가 소위 신령한 세계에 갇혀서 현실을 도외시하는 일이 없게 하며, 그 대신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앞에 행하는 삶을 살도록 촉구합니다. 구약의 '길이'는 우리가 근시안적인 생각에 빠져 있지 않도록 하여 주고, 어떻게 끝까지 인내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갈지를 가르쳐 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모세와 다윗과 엘리야와 엘리사의 하나님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페일스(H. G. L. Peels),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pp. 40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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