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님의 블로그

아리스토텔레스 주의 본문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주의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6. 02:18
플라톤에게 있어서 사물의 본질, 즉 에이도스는 현실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뒤 우리의 영혼이 돌아가는 이데아의 세계에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사물의 본질은 사물을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세계, 즉 땅을 가리키고 있다.

현실세계를 긍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은 실체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제1실체와 제2실체로 나누고 있다. 그에게 있어 제1실체가 구체적인 개체들, 즉 개별적 사물들을 가리킨다면, 제2실체는 개체들이 속해 있는 종(種)이나 유(類)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로 지칭되는 개체가 제1실체라면, 사람으로 지칭되는 종이 바로 제2실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1실체가 없다면 제2실체도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확신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이 현실세계에서 전부 사라진다면, 인간이라는 제2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을 가리키던 플라톤과는 달리 땅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제2실체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땅은 바로 제1실체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철학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가령 그가 강조했던 제1실체가 플라톤이 부정한 현실세계를 가리킨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1실체에 비해 경시했던 제2실체는 결국 플라톤이 긍정했던 이데아의 세계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당하게 하늘이 아니라 땅에 존재하는 개체들, 즉 제1실체에서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개체들이 본질에 대해 말할 때 아리스토텔레스도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에이도스라는 개념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즉 이 개별적인 살과 뼈 속에 있는 이러저러한 에이도스가 칼리아스 혹은 소크라테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질료에 있어서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질료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종(種)에 있어서는 같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종은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이다.”『형이상학』

칼리아스라고 불리는 개체와 소크라테스라고 불리는 개체가 있다고 해보자. 이들이 제1실체들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개체들 안에 이미 분할이 불가능한 전체로서의 에이도스가 내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이 에이도스가 그 개체의 본질인 셈이다. 그러니까 칼리아스의 본질은 칼리아스라고 하는 육체 속에 내재하는 칼리아스의 에이도스이고, 소크라테스의 본질은 소크라테스라고 하는 육체 속에 내재하는 소크라테스의 에이도스라는 것이다. 칼리아스라는 개체로부터 칼리아스의 에이도스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칼리아스의 “살과 뼈”, 즉 칼리아스의 질료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도 소크라테스의 에이도스를 제외하면 소크라테스의 “살과 뼈”가 남을 것이다. 분명 칼리아스를 구성하는 살과 뼈는 소크라테스를 구성하는 살과 뼈와 다를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은 질료에 있어서 다르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칼리아스와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의 제1실체는, 인간종이라는 제2실체를 공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들은 종에 있어서는 같다”라고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영혼론』을 넘겨 보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체적인 개체들을 이루고 있는 질료들의 조직 원리를 영혼(psyche)이라고 정의하면서, 이것들 개체들의 본질 즉, 에이도스라고 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의 영혼은 플라톤이 생각했던 영혼과는 서로 상이한 것이다. 플라톤에게 영혼은 육체와는 무관한 것으로서 불변하는 실체라고 할 수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은 개체가 소멸하면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칼리아스나 소크라테스라는 개체가 질료의 차원에서 변한다고 하더라도 왜 동일한 칼리아스나 소크라테스로 불릴 수 있는지 해명하는 데 나름대로 성공했다. 그들의 뼈와 살은 외적인 상처나 자연적인 수명증가로 몰라보게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칼리아스는 칼리아스이고,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 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전체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 즉 자신만의 에이도스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팔이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칼리아스는 여전히 칼리아스로 남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소크라테스로 남게 될 것이다. [강신주, 『철학 v s철학』, pp.31 ~ 35]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식적 실재론  (0) 2016.05.16
유물론의 역사  (0) 2016.05.16
사단 칠정 논쟁  (0) 2016.05.16
자연법론의 발전과정  (0) 2016.05.15
중세 보편 논쟁  (0) 201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