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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양육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21:23

1. 15세 이전에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세계사와 세계지리 외에는 다른 것을 타율적으로 학습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 때 생각 없이 계속 놀려고만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 세상의 모순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어느 정도 놔두어야 합니다. [김남준]

3. 자녀의 부탁이 부당하더라도 이를 언제나 거절한다면, 자녀가 은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게 됩니다. [김남준]

4. 부모가 아무리 잘하려 한다 하더라도, 자녀가 '지랄 같은' 경우가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아이에게는 효과가 있는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5. 다른 아이의 장점을 인용하여, 자기 아이의 단점을 지적하는 말은 입도 벙긋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6.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화목한 친자(親子)관계 형성의 핵심이다. 자녀의 마음 안에 부모에 대한 화(火, anger)와 짜증스러운 마음이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점에서 실패하면 다른 부분에서 아무리 잘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면 사춘기에 자녀와의 갈등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사춘기 자녀로 인해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7. 자녀에 대한 애정 표현을 자주해야 한다. 그러나 이 때, 자녀가 왜 사랑스러운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이유 때문에 자기가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위험이 있다.

8. 자녀에 대한 애정표현에 있어서 스킨십은 매우 중요하다.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팔, 등, 다리, 배를 골고루 부벼 주는 것은 매우 좋다. 지능 발달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

9. 어려서부터 인생의 비참함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히 죽음의 실재성에 대해 자녀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것에 성공할 경우,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도 심심지 않게 있다. 초상집과 양로원에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 7:4)

10. 세상과 인생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려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이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진실을 아이가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현명하지 못한 방식이다.

11. 비록 자기사랑의 질서에서 그것을 형성시킬 수 밖에 없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잘하는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12. 특정 친구와 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놀고 싶게 되거나, 반대로 그런 아이들을 경멸하는 악함이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역으로 특정 친구와 놀라고 가르치는 것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없이 누구나 사귈 것을 권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자녀가 알아서 건전한 기준을 세우게 되고, 친구들로부터의 나쁜 영향을 스스로 걸러 낼 수 있게 된다.

13. 자녀에게 말과 몸으로 장난을 거는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좋다. 자녀에게 부모도 감정과 지성을 가진 또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건 무엇보다 중요한 효과인데) 자녀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말 장난을 할 때 비꼬는 것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자녀를 괴롭히라는 말이 아니다.

14. 유쾌과 진지함, 일과 놀이, 이상과 현실을 균형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너무 현실적이게 만들어도 안 되고 너무 이상적으로 만들어도 안 된다.

15. 애초에, 자녀 양육에 있어서 자신이 실수와 오류를 반드시 범할 것임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16. 공부를 강요해서는 절대 안 된다. 15세가 넘어서도 자녀가 스스로 공부할 뜻을 세우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생각해야 한다. 타고난 학자 기질이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강요하면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하기 싫은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17. 물론 내 아이의 친구들보다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내 아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기도 전에, 이미 공부를 못하는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15세가 되기 전에는 자녀가 온갖 종류의 성적 경쟁에서 자유롭게 도와줄 필요가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것을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18. 어려서 공부를 강요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부분은 20살이 되기 전에 폭발하게 되어 있다. 20살 전에 폭발하면 대입은 물 건너 간다.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이래저래 적절하지 않다. 물론 공부를 강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이다. 그것은 그 아이가 특수한 경우다. 예외를 가지고 와서 자기 아이에게 적용할 원칙으로 삼을 수는 없다. 

19. 자녀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원칙과 예외를 잘 설정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자녀를 성인을 대하듯 하고, 예외적으로 어린이를 대하듯 해야 한다. 대등한 인격체로서 어른과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위아래를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부모와 어른 앞에서 항상 자신을 낮추면 질서와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20. 사람은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때 세상을 제멋대로 이해하지 않도록 도와주서야 한다. 

21. '아이에게'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하겠는지를 물어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방법이다.

22. 요즘, 젊은 세대가 무례하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저 역시 나이든 사람이니 응당 나이든 세대 편일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저는 부모를 대하는 자녀들의 태도보다는 자녀를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에 흠칫 놀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어떤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 집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밖에서 다른 젊은이들에게 그랬다간 그걸로 완전히 관계가 끝났을 법한 무례한 말로 다 자란 자녀들을 대하는 광경을 보고 당황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습니까? 자녀들만이 이해할 수 잇는 문제에 관한 어른들의 독단적인 주장, 사정없이 말 끊어 버리기, 딱 잘라 무시하기, 젊은이들이 진지하게 여기는 것들을 ― 때때로 그들의 신앙심까지도 ― 조롱하기, 자녀들의 친구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 등. 이런 것들은 "왜 우리 애들은 늘 밖으로만 나다니는 걸까? 왜 우리 애들은 자기 집보단 남의 집을 더 좋아하는 걸까?"라는 물읍에 대한 분명한 답이 되어 줍니다.
이런 참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왜 집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여보시오. 집이란 편하게 쉬라고 있는 곳이고. 어떻게 사람이 늘 최선의 모습만 보여 줍니까? 사람이 자기 집에서조차 맘 편히 행동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디서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우리 식구들은 집에서까지 사회생활의 예의범절을 지키고 싶어 하지 않소. 우리는 행복한 가정이오.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말이든 할 수 있고, 또 다들 괘념치 않소. 우리는 모두 이해하니깐 말이오."
이 역시 진실과 너무 가깝기에, 그래서 더욱 치명적인 그런 거짓입니다. 애정관계란 편한 옷을 입을 수 있고 서로 편하게 대해도 결례가 되지 않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편한 옷을 입는 것과 똑같은 옷을 냄새가 날 때까지 입는 것은 별개입니다. 가정생활을 위해서도 나름으로 입어야 할 적당한 옷이 있습니다. [C. S. 루이스,『네 가지 사랑』, pp.80 ~ 81]

23. 모성애는 선물의 사랑이지만, 무언가를 줄 필요가 있는 사랑,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필요를 필요로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주는 일의 진정한 목표는, 받는 사람이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리들을 먹이는 것은 머지않아 그들 스스로 먹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이처럼 선물의 사랑에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사랑은 포기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들에겐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어"라고 말하게 되는 시간을 보답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모성 본능 자체로는 이러한 사랑의 법을 이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본능은 대상의 유익을 바라지만, 여기에는 그 유익이 오직 자기가 주는 유익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 모성 본능이 스스로 포기할 수 있게 되려면, 더 차원 높은 사랑 ― 누구로부터이건 상관 없이, 자기 사랑의 대상이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사랑 ― 이 간섭해서 도와주거나 그 본능을 길들여야만 합니다. 
물론 많은 경우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필요함을 고집하는 탐욕스런 욕망은, 대상이 계속 자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머물도록 만들거나 가상의 필요를 조작해 냄으로써 자기만족을 추구할 것입니다. 그것도 눈 한 번 깜작하지 않고 그럴 텐데, 왜냐하면 자신을 선물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여(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스스로를 '이타적'인 사랑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네 가지 사랑』, pp. 92 ~ 93]

24.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너 ~ 학원 다닐래? 친구들 다 다니는데?" 이렇게 자주 물어 보셨다. 그에 대해 내가 싫다고 말하면, "알겠어. 대신 나중에 커서 엄마 원망하면 안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이 꽤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은연 중에 ① 지금 받아야 할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과, ② 장래에는 십중팔구 인생이 지금 유년기 같은 방식으로 쉽게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③ 내 인생의 결정에 대해 다소간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자랑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말한다.) 나는 노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놀다가 중3말에 '자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공부해야 겠다는 뜻을 세워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관련도서 : ①『가족』(로이드 존스 지음), ②『가정, 또 하나의 천국』(김남준 지음), ③『언약 자손으로 양육하라』(조엘 비키 지음), ④『남자아이 심리백과』(마이클 거리언 지음), ⑤『네 가지 사랑』(C. 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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