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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정치철학의 기초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20:18
1. 성도의 정신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공적인(public) 정신이 되도록 하는 성향이 있다. 바른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란 소심하고 개인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자기가 속한 공적인 공동체의 유익에 큰 관심을 가진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비록 바벨론이 유대인의 도시가 아니라 그들이 잡혀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유익을 구하라고 명하셨다(렘 29 : 7). … 또한, 성도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자기 나라의 유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자기 나라의 재난에 대해 근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매우 진노케 하는 행위로 평가된다(암 6 : 6). [조나단 에드워즈,『사랑과 그 열매』]

2. 죄가 근본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지금도 개선될 수 없고, 앞으로도 결코 개선될 수 없다고 성경은 확고하게 단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개선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 : 26). … 예수님은 모든 시대를 알고 계시기에, 인류 그 자체는 죄와 타락으로 인해 역사가 끝날 때까지 태초의 모습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제시하셨습니다. … 서슴없이 말하건대, 성경의 역사관은 심히 비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연히 인기가 없는 것이며, 지난 백 년 간도 인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 더 나아가 성경은 이 모든 일로 인해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며, 인간의 전 역사는, 하나님이 죄와 악과 잘못에 심판을 선언하시는 최후의 장엄한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2-1. 인간은 그동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세상을 바로잡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 일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따고 믿고 있으며,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옳다고 믿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 이 "그러나"가 아주 중요한데 ― 성경 가르침의 주된 강조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성경은 이 옛 세상이 악한 세상이요 저주받은 세상이요 망할 세상임을 아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현실성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행동 등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야말로 오늘날 누구보다 미혹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죄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의 전 역사는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이간의 시도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도가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으며, 최후의 성공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이는 20세기에 인간은 어느 때보다 큰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바로잡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 해줄 대답은 한 가지뿐입니다. 곧, 소망은 장차 다가올 세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내가 자랑하는 복음』, pp.297 ~ 298]

3.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인간으로 사셨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묻게 됩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죄의 권능, 사탄의 권능, 악의 세력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그분만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셨기 때문입니다. …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하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아주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선거를 통해서는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정당 역시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하나님의 사랑』]

4.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어떠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할 때는, 어떤 공동체의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지에 대한 생각과 현실적으로 우리가실현할 수 있는더 나은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구분하여 제시하여야 한다. [유대웅]

5. 다가오는 세기의 가장 큰 위험은 … 하나님 없는 정치가 될 것이다. [윌리엄 부스]

6.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어 있는 본연의 위치로 돌아갈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깨닫기 시작하며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 다른 사람들도 정치와 사회 상황에 대해 말들은 많이 쏟아 내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상황들에 현실적으로 대처하여 지속적이고도 영구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교회의 활동입니다. [로이드 존스,『설교와 설교자』, p.55]
7. 지난 세기의 권력 남용과 인권 유린이라는 아픈 기억으로 인해 오늘날은 절차적 정당성의 가치가 평가절상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부정적인 역사의 경험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가치 역시 평가절상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반성(reflection)이 없이, 오늘날 민주주의는 자기 목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그 확보의 대표적 방법인 민주주의 역시)은 그 다음 번의 실체적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다음 번의 실체적 정당성이 훼손될 염려가 없다면 절차적 정당성을 흠결을 문제 삼아서는 아니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수단에 불과하다. 예컨대, 자동차가 단 한 대도 지나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무단 횡단을 하는 것에 제재를 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허용한다면, 이번 사건에서 정말 차가 단 한대도 지나가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것이기에 신속한 법집행이 어렵게 될 뿐더러, 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개개인에게 맡긴다면, 이번에는 위험이 없었다 하더라도 다음 번에는 사고가 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단횡단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하겠지만, 민주'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대웅]

8. 보수주의 : 어떤 식으로든 현실 정치 질서는 각 사람의 마음 안에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9. 현실주의 : 이 세상에는 이상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현실의 일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10. 이상주의 : 정말로 적극적으로 나쁘고 악한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이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런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교육이나 경제력에 관계 없이 그렇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11. 본래 정치는 수많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들을 타협하고 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개념 필연적으로 고상할 수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원래 '개싸움'이 벌어져야 마땅한 상황을, 의례(儀禮)화 해서 신사적으로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정치다. 이에 대해 법은 이렇게 고상하지 않은 정치라는 현실을, 올바름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재단(裁斷)하는 것이다.

12. 공동체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의 필요나 욕구는 그것보다 크다. 또 '정치'의 개입이 있기 전 자원의 분배상태는 균등하지 않다. 정치는 이러한 자원의 분배에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란 권력을 형성해서 그 힘으로 자원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공정함이다. 정치는 공정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럴 때에 공동체가 도덕적으로 선하게 된다. (공동체가 왜 도덕적으로 선해야 하는지는 절대주의적 관점과 실용주의적 관점 모두에 있어서 지지받을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 공정함이다. 모든 구성원들은 외모, 학벌, 재산 등에서 다르다. 이때 어떤 자원을 구성원 A와 B에게 다르게 분배하는 것이 정당화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르게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되어야 한다. B가 A보다 더 적은 자원을 배분받는다면, B가 어찌 할 수 있었던 점만을 이유로 하여야 한다. B도 어찌할 수 없었던 점을 이유로 B가 A보다 더 적은 자원을 배분받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또 A역시 B보다 더 많은 자원을 배분 받는 것도 A가 B보다 무언가 더 자기가 잘한 일 때문인 경우이어야만 공정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A가 B보다 더 많은 자원을 배분 받을 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B가 A보다 더 많은 자원을 배분 받는 것은 극단적으로 불공정한 것이 된다. 공로주의(meritocratic)는 거의 자연법에 가깝다. 정치는 이렇게 '공정'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실현 가능성이다. 정치는 무엇이 공정한지 이론적인 방향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지금 당장' 싸우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 '지금 당장' 자원을 배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시될 수 있는 방안 중에서 실현 가능한 것을 택하여 실행하여야 한다. 여기서 차악의 원리 혹은 차선의 원리가 등장한다. 우리는 최선의 공정함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을 해야 한다(차악의 원리). 혹은 최선의 공정함을 추구할 수는 없더라도,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실현 가능한 방안들 중에서 가장 공정성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택해서 실행해야 한다(차선의 원리).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실현가능성이 커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힘이 무조건 강력하면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문제가 등장할 수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공동체 내의 가장 강력한 개인보다는 국가권력 혹은 정치권력의 힘이 더 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성에서 국가권력을 매수하고 있는 현상은 공동체 내의 공정성 실현에 커다란 문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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