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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론

기도의 원동력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20:11

1. 지속적이고 열렬한 기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가 계속해서 공급되어야 한다.

  ① 첫째는 기도하는 대상(하나님의 나라, 이웃, 가족, 국가, 자기 자신)에 대한 기도자의 사랑이다. 사랑이 있으면 염려하게 되고, 염려하면 기도하게 된다.

  ② 둘째는 기도하는 대상이 처해 있는 필요(내지 위험)에 대한 기도자의 인식이다.

  ③ 셋째는 우리의 빈곤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대한 인식이다. 하나님은 누구이시고, 그 앞의 자기는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아 알게 되면 기도하게 된다."너희는 사람이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주 여호와의 말이다."(겔 34:31)

  ④ 넷째는 하나님께서 기도로 구하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기대이다. 계속해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할 경우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다. 우리의 믿음과 경험이 서로 엇갈린 방향을 가리킬 때는 기도가 어려워 진다. 그러므로 마음의 소원을 허락받는 것은 생명나무(잠 13:12)다.
  이 넷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열렬한 기도는 불가능하다. 반면 이 네 가지만 갖춰지면 우리는 열렬한 기도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네 가지는 열렬한 기도의 충분조건이자 필요조건이다.
  생각건대,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대가 사라지지 않게 하시는 은혜가 아닐까 한다. 더 정확히는 기대가 있게 하시는 은혜다. 어쩌면 이것이 기도의 거의 모든 것이 아닐까 한다. 의심하자면 이 모든 짓거리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혹은 해봐야 별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만한 합리적인 설명은 무궁무진하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는 성령님이 주신다. 그런데 성령님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분이다."홀연히"임하신다. 성령님이 그 뜻을 따라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부어주시면 우리는 열렬한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합심하여 성령의 부으심을 구할 수 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신부인 교회의 요청을 거절하실리 없다. 게다가 성령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주님 저희들은 당신에 대한 별대른 기대가 없을만큼 비참하게 물러난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희들을 긍휼이 여겨주시고, 당신에 대한 기대를 부어주시옵소서."[유대웅]

1-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 주께서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니, 내가 평생에 기도할 것이다. [바른성경 시편116편 1절 ~ 2절]

1-2. 나는 탄식하다 지쳤으며 밤마다 눈물로 침대를 띄우고 내 자리를 적십니다. 내 눈은 슬픔 때문에 흐려졌고 내 모든 대적 때문에 어두워졌습니다. 너희 모든 행악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여호와께서 나의 울음소리를 들어주셨다. 여호와께서 나의 탄원을 들어주셨으며, 여호와께서 나의 기도를 받으신다. [바른성경 시편 6편 6절 ~ 9절]

1-3. 주께서 내게 응답하실 것이므로 내가 주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게 귀를 기울이셔서 내 말을 들으소서. [바른성경 시편17편 6절]

1-4. 찬양받으실 여호와께 내가 부르짖을 것이니, 나의 원수들로부터 내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바른성경 시편18편 3절]

1-5. 주께서 그에게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셀라 [바른성경 시편21편 2절]

2. 사실 기도하라고 촉구할 때 바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비교적 문제가 적은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려 합니다. 기도를 해도 거절감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려 눈을 감아도 온갖 잡스러운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 무엇이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도 말씀 생활도 없으니, 행해야 할 의무를 행할 수 있는 원기를 공급받을 통로가 없는 것입니다. [김남준, 『하나님의 용서』, pp.32 ~ 33]

3. 본질상 하나님은 충분히 자충족적이시고 삼위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무한하고 충만하신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만족시키신다. 하나님은 만물에 대한 절대지존의 주권적 왕으로서 천지를 다스리시는 영광스럽고 능하신 분, 무한히 지혜롭고 강하신 분이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자충족적인 하나님이시자 주권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만유를 소유하고 만유를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본질상 부족함이나 결핍을 갖고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의 권능과 권세는 절대로 중단되지 않는다.
  … 하나님은 피조물과 영원히 독립적으로 존재하시고, 모든 좋은 속성과 완전성을 당신 안에, 내재적으로 그리고 무한히 소유하고 계신다. 모든 선(善)은 하나님의 선이고, 하나님은 선을 무한히 소유하고 계신다. 모든 미(美)는 하나님의 미이고, 하나님은 미를 무한히 소유하고 계신다. 모든 능력과 지혜, 모든 완전성 곧 존재하는 모든 좋은 속성은 하나님 안에 존재하고, 하나님은 이 모든 속성을 각각 무한히 그리고 본질적으로 소유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이미 모든 속성을 한량없이 소유하고 계시는 그 분에게 덧붙여질 이유가 없다. 대신 하나님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존재를 허락하시고, 그것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그리고 모든 속성으로 그것을 채우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오직 존재한다(행 17:24-25).
  하나님은 영원히 그리고 무한히 자충족적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보편적으로 그리고 독보적으로 자신이 지으신 세상에 대해 주권적인 분이시다. 하나님께 채찍을 맞고 개심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하)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선택하고 예정하신다. 하나님은"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엡1:11상)로서, 자신의 계획을 따라 그렇게 행하신다. 그리고 우주를 통치하실 때 그리고 왕과 군주와 민족들에게 명하실 때, 하나님은 아무런 조언을 받지 않으시고(사 40:13-14), 어떤 면에서도 인간의 집단적인 힘과 뜻에 의해 훼방을 받지 않으신다(단 4:35상).
… 반면에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창조의 말씀이 없이는 존재도 없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에 대한 뜻이 없으셨더라면 생명이나 아무런 속성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을 무로부터(ex nihilo) 존재하게 하셨다(히 11:3, 계 4:11). 따라서 피조성(created natures)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곤궁하고 무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죄가 더해짐으로써, 우리의 본성은 타락한 본성으로서 크게 뒤틀리고 왜곡되어 우리의 지성, 감정, 의지 그리고 육체까지 모두 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전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를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 주어진) 온전한 육체, 지성, 감정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은 죄로 말미암아 잘못된 길을 가고 있고, 우매하고 속임을 당한 존재가 되었고, 우리의 육체는 일관되게 타락의 결국이 사망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인간 간의 대조만큼 더 큰 대조는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무한한 충만하심을 소유하고 있으시나 우리는 파생적으로 아주 소량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매순간에 제공하시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손은 중단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좌절될 수 없지만, 우리는 너무 허약한 손을 갖고 있고, 우리의 뜻은, 하나님이 목적을 갖고 허용하시는 것 외에는 피조물 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독립적 존재이시지만, 우리는 의존적 존재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것을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는다면,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가 다음 호흡을 하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산소를 우리 주변 환경 속에서 제거했을 때 즉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염두에 두는 것이 전부다.
  분명히 말해, 성경 전체에서 가장 경이롭고 진지하고 심원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은 단순히 자신이 지으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세상과 세상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또한 피조물인 우리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행 17:24-25).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절대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하시는 것은 무의미하다. [브루스 웨어,『더 큰 하나님의 영광』, pp.243-246 표현을 내가 수정함]

  … 이것은 확실히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간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어떤 인간관계도 자충족적인 존재가 당사자인 경우는 없다! 남편이든 아내든 친구든 충만이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충만하시다. 로마서 11장 36절을 생각해 보라. 만물이"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로게로 돌아감이라!"사도행전 17장 25절을 보라. 하나님은"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야고보서 1장 17절도 보자."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진실로, 이 … 관계 속에서 한 당사자는 (문자 그대로) 전부를 갖고 계시고, 다른 당사자는 철저히 곤궁하다. 하나님은 허세를 부리는 (다른 말로는 사악한 교만으로 알려져 있는) 우리의 성향에 이끌리는 우리보다 이 사실을 더 잘 알고 계시고, 그러기에 기도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초청하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우리에게 애걸하시고 우리를 부추기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시며 어떻게든 우리가 기도하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토록 간절하게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고, 이 영광스러운 환상에 따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는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한 가지를 더 알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곧 하나님은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수여자가 되는 것을 즐겨하신다. 하나님은 자기를 겸손하게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최상의 것을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은"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의 원천이 되는데 큰 기쁨을 갖고 계시고,"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시 84:11) 정도로, 관대하고 후하고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기도하라고 요구하신다.
  우리 구주의 가르침으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새롭게 들어보자."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브루스 웨어,『더 큰 하나님의 영광』, pp.252-254 표현을 내가 수정함]

4. 세이어즈는 나태를 이렇게 정의했다."아무것도 믿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알려고 추구하지 않고, 간섭하지도 않고, 즐기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위해서 살아야 할 그 무엇도 없고, 또 죽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에 그저 살아 있는 죄다."… 나태가 도덕적 · 종교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몸이 굼뜨기 때문이 아니라 그 누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원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pp.112~113]

5. '기름 부음'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실 때까지 구하십시오. 그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 p.500]

6. 기도 응답이 수백, 수천 번에 걸쳐서 거절되면(정확히는 거절의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기도로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을 때에도,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 하여 기뻐할 수 없게 된다. 어차피 하나님은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데 우연히 그것이 내가 구한 것과 일치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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