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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사회과학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21. 11. 14. 06:27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사회과학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도 일면 타당한 부분과, 타면 부당한 부분을 함께 갖고 있다.

 

페미니즘의 본류는 여성을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데 있다. 예컨대,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사람을 고용할 때 그 사람이 회사에 수익을 얼마나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혹은 얼마나 그 직무에 적합한지만을 보아야 하지, 그 사람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때문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역으로 그 사람이 여성인가 남성인가 때문에, 그 회사의 수익창출이나 직무적합성에 영향이 있다면 그로 인한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직선거에 대한 투표에 있어서 불이익이 가해져서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불이익의 철폐. 이것은 그 불이익 철폐를 주장하는 여성 이외의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한 내용의 페미니즘이다. 따라서 여성이 사회(여기서 '사회'라 함은, 주장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를 향하여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의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여성이 사회를 향하여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어떤 추가적인 이익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게 요구될 수 있는 내용의 페미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그 여성 이외의 사람들에게 너의 이익을 덜어내어, 나에게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밤 10시 이후에 여성이 귀갓길 동행을 경찰에 대하여 요구할 경우, 경찰이 응할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제도는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마땅이 요구할 수 있는 내용의 제도는 아니다.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지면 결론적으로 그 여성을 위하여 그 여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희생을 하여야 한다. 일단 그 여성을 위하여 경찰 공무원은 기존에 부담하지 않던 추가적인 의무를 부담해야 할 것이고, 그 의무 이행에 따른 비용은 그 여성 이외의 사람들이 지출한 세금으로 충당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같은 여성 내에서도 이해(利害)가 갈리는데, 이 제도를 이용할 생각이 없는 여성은 타인의 이익을 위하여, 원치 않는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나는 저 제도를 이용하지 않을 것인데도, 왜 매달 2,315원씩을 세금으로 더 내야 하는가?'). 이것은 나의 이익을 위해 너의 이익을 희생하라는 내용의 주장으로서, 결론적으로 타인에 대하여 침익적(侵益的)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너'를 위해 '나'더러 희생을 하라는 주장을 '나'는 왜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 도의적관점에서도, 자신이 받고 있는 침익적 상황이 힘이 드니, 그것을 철폐해달라고 요구하는 자가, 어째서 나를 위해 네가 침익을 받으라는 주장은 함부로 하는 것일까?

 

사회가 가하는 자신에 대한 불이익의 제거를 사회에 대하여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내용의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 증진을 위하여, 사회가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요구는, 타인이 수용하지 않아도 되는 (혹시 받아들여준다면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이 되는) 부당한 내용의 페미니즘이다. 이것은 여성을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여성을 '인간'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대우해 달라는 요구다.

 

더 일반화 해보자. 타인이 자신에 대하여 가하고 있는 침익을 철폐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회적 주장은 꼭 페미니즘이 아니라 하더라도 타당하다. 그러나 타인에 대하여 나를 위하여 너의 이익을 덜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이것은 그 타인의 호의에 기대어 기대해 봄직한 것이지, 그 타인에 대하여 마땅하게 요구하고, 상대방이 그것을 거부할 경우 상대방을 비난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사회과학적 관점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검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페미니즘의 근본 정신과 어울리기가 어려운데, 이것은 결국 네가 손해를 보고 있는가, 내가 손해를 보고 있는가를 치열하게 따지는 타산(打算)적 정신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은 사람들의 정신이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정신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는 부당한, 여성에 대한 수익(授益)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내가 받고 있는 불이익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억울한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떤 이익을 누리고 있는가를 열심히 궁구(窮究)하는 페미니즘의 근본 정신은 죄이자 악이다. 그러나 역시 잊지 말아야 할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타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은 무엇인가, 타인은 무엇이 억울한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어떤 손해를 받고 있는가를 외면하는 것 역시 죄이자 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