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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방법론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7. 2. 23. 11:57

[여기서 말하는 신학방법론이라는 것은 신학교에 가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는 거리가 멉니다.]


(1) 조직신학은 우리가 믿고 있는 바이다. 성경 신학은 조직 신학의 내용을 바르게 하기 위해 존재하여야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바를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2) 기독교 교리의 내용을 논리적 순서에 따라 배열해 보면 결국 제일 앞에 오는 것은, ① 인간을 포함한 온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②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예배받기 원하는지를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 드러내기 원해왔고 또 그 드러내는 일이 확실히 벌어지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떤 '존재'를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다.
 
(3) 기독교 철학을, 성경에 기초하여 이 세상은 왜 존재하고, 선과 악의 판단기준은 무엇이며,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탐구하여 밝히는 학문이라고 정의했을 때, 이 학문은, 인간을 포함한 온 우주는 본래는 없었으나 지금은 다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4) 성경해석은 이 계시를 주신 화자 즉, 하나님의 취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①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 계시를 처음 주실 당시의 수신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려고 하신 바이고, ② 다른 하나는 수 많은 계시들 중 그것을 굳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보존하여 주심으로써 말씀하려고 하신 바를 뜻한다.


(5) 성경이 당해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는 참되다. 따라서 만일 그것이 사실(fact)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드려내려 한 경우라면,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바가 실제 사실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반대로 그 표현을 통해 다른 것을 의미하려 한 경우라면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사실(fact)에 대한 진술은 실제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6) 우리가 만약 누군가는 반대할만한 내용의 신학적 주장을 하려 할 때에는, 본인 스스로에게 '너 그런 식의 개념 구분, 그런 식의 문제제기를 죽어서 예수님 보좌 앞에서 예수님과 1:1로 마주섰을 때도 진심으로 계속할 수 있겠냐?'라는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7) 물론 이 모든 것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복음은 모름지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도 아니고, 지금 당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진단해 주는 설명 체계도 아니며,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아니다.

(8) 성경신학을 전개할 때는, 자신이 귀추법(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을 사용하고 있음을 정직하게 인지하여야 한다. "이런 구절 저런 구절들이, 이 해석의 틀을 전제로 둔다면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겠니?"라고 자신이 해석의 틀 중 하나를 제안하고 있는 것에 불과함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애석하게도 톰 라이트 조차 바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주장하는 일에 있어서 이것에 실패하고 있다.) 예컨대 창세기 1장 ~ 11장이 세상이 형성된 자연과학적 과정을 밝히기 위해 기술되지 않았다는 논리도 사실은 귀추법의 일종일 뿐이다. 정직하게 논증하려면,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고 표현해야지, 남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는 식으로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정직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성경 기자의 마음속에 있던 의도가 무엇인지를 추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9) 교회사는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면 안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또 자신의 입장이 전체적인 관점 가운데 어떤 견지의 것인지, 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독교적 이해에 대해 어떤 다른 생각들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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