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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자유 정리 본문
(1) 성경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에 관해서는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의지의 자유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종류의 자유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2) 인간의 의지가 갖는 자유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① 강한 결정론, ② 약한 결정론, ③ 자유의지론이 그 셋이다.
(3) 자유의지론은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때 ① 인간은 선재하는 조건들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②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가 그것에 의해 충분하게(sufficiently) 정해지지는 않는다고 보는 견해다. (여기서 '충분하다'고 할 때의 '충분'이란 논리학에 등장하는 충분조건과 필요조건 이야기의 그 '충분'과 같은 뜻이다.) ③ 그래서 우리가 A가 아닌 B를 선호하도록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B가 아닌 A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 능력을 '반대선택의 자유' 또는 '임의적 자유' 또는 '무차별적 자유'라 부른다. 이 견해는 자유에 관한 우리의 직관적 관념과 잘 부합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견해는 어떤 사람(甲)이 A가 아닌 B를 선택하였을 경우, 그가 A가 아니라 하필이면 B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甲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이렇게 답한다 하더라도 이 견해는 다시 (ⅰ) 甲이 B를 '원했기 때문에' B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甲이 A가 아닌 B를 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ⅱ) 또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정해진다는 것'을 지금 구분하고 있는데, '정해진다는 것'은 결국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 견해는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 것과 확실하지는 않게 영향을 받는 것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 어떤 요인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이면 미친 것이고, 안 미친 것이면 안 미친 것이지, 확실하게 미치지는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또 미치지 않은 나머지 영역은 무엇에 의해 좌우 되는가에 답해야 한다.
(4) 한편 자유의지론의 문제점으로 이 견해의 귀결로서 주장하는 하나님에 관한 주장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주장과 달라질 우려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데(이 글을 처음썼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나도 이에 동의하고 있었다), 지금은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런 종류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①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벌어질 모든 일들을 창세 전부터 알고 계셨고, ② 또 창세 전에 미리 정해두셨으며, ③ 온 세상의 모든 사항이 당신의 뜻을 따라 이루어지도록 통치하신다는 사실과 논리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5) 결정론이란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가 선재하는 조건들에 의해 충분하게(sufficiently) 정해진다고 보는 견해다.
(6) 강한 결정론은 ①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선재하는 조건들에 의해 충분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② 인간은 자유를 갖지 못하고 ③ 따라서 인간은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분명하게 묻고 있으므로 신학적으로는 이 견해가 유지될 수 없다.
(7) 약한 결정론은 양립가능론(compatibilism)으로도 불린다. 이 견해는 ① 인간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선재하는 조건들에 의해 충분하게 정해지지만, ② 이 경우에도 결국 인간은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하다고 본다. 말하자면 '자유롭다'는 말의 이해를 위의 견해들과 달리하는 것이다. ③ 또 이 견해는, 일반적으로 악한 것을 선택한 인간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했어야 한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도덕적 책임의 전제조건으로 이러한 반대선택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행위자가 악한 것을 가장 원해서 그것을 수행하였다면 행위자의 내면 상태에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고, 도덕적 책임은 본래 이에 대해 부과되는 것이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이 견해는 ① 甲이 B를 가장 원하는 내면의 상태를 갖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혹은 그렇게 태어나도록 만든 이는 누구인가), ② 타락 이후에는 모든 사람이 그 결과로서 악한 것을 가장 원하게 되었으므로 인간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타락 이전의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을 가장 원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라 답하는 방법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8)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서는 결국 약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논쟁은 각자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료화하며 계속되고 있다. 무엇이 인간이 갖는 자유에 대한 진실인지에 관한 이 논쟁이 결판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했는가 하는 문제가 검증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해야 하고, ②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실험조건이다.
(9) 이것은 정말 방론(傍論, obiter dictum)이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언급을 하고 넘어가야 겠다. 실제로 이 논의들을 적용하여 인생을 살 때 우리는 겁을 먹을 것이 없다. 전적주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열린신론은 인간의 반대선택의 자유 개념을 고수하기 위해 하나님을 작은 분으로 만드는 신론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전적주권을 쥐신 하나님이 당신의 택하신 자들에게 무한한 선하심을 베푸시기로 창세 전에 작정하셨다. 이것만큼은 성경에서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비택자들도 겁먹을 필요가 없는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성경이 이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비택자들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선하심을 베푸시고 그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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