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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플라톤의 우주발생론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18:06

 “생성되는 모든 것은 … 필연적으로 원인이 되는 어떤 것에 의해 형성됩니다. 어떤 것도 원인 없이는 생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만드는 이’이건 간에,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을 본으로 삼아, 형태와 성능을 갖추게 할 경우에만, 그리고 이렇게 완성되는 경우에만 그 만든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티마이오스』


  플라톤의 우주발생론은 기본적으로 ‘제작’이라는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제작자가 의자를 만든다고 해보자. 그에게는 의자의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작에는 항상 세 가지 계기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 그 세 가지는 ‘제작자’ 본인, ‘설계도’, 그리고 ‘재료’다.


  플라톤은 제작의 이미지를 우주발생론으로까지 확대한다. 지금은 낯설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유명했던 플라톤의 원인론이 바로 이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우주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계기를 원인으로서 전제하고 발생했다. 첫째 계기는 제작자를 의미하는 ‘데미우르고스’이고, 둘째 계기는 ‘언제나 같은 생태로 있는 것’으로서 본이 되는 ‘형상’이다. 마지막 셋째 계기는 원료를 의미하는 ‘질료’다.

  아쉽게도 방금 읽는 구절에서는 첫째와 둘째 계기는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셋째 계기는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을 뿐이다. 중세 서양 지성인들이 플라톤의 우주발생론에 ‘데미우르고스’ 즉, ‘제작자’의 계기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데미우르고스라는 개념이, 아직 기독교를 낯설게 여겼던 당시 유럽인들에게 창조주로서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플라톤의 우주발생론과 기독교의 관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기독교의 신은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되는 반면,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는 모든 것을 창조할 수는 없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는 형상과 질료 자체는 창조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다. 


  한편 플라톤을 통해 이제 서양철학은 어떤 사태를 설명할 때 이 세 가지를 주된 원인으로 설명하는 사유 패턴을 공유하게 된다. ‘데미우르고스’, ‘형상’, ‘질료’라는 세 가지 원인이 그 이후 칸트 같은 철학자에게서 ‘이성’, ‘오성의 범주’, ‘물자체’라는 인식론의 세 가지 계기로 변주되어 반복된다는 사실을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데미우르고스가 형상을 가지고 질료에 조작을 가하여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만들었던 것처럼, 칸트 철학에서 이성은 오성이 가지는 다양한 범주들을 가지고 물자체에 조작을 가하여 다양한 표상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서양철학의 내적인 논리 구조가 항상 ‘능동적인 주체’, ‘불변하는 법칙’, ‘유동적인 타자’라는 세 가지 변별적 요소의 함수 형태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강신주,『철학 vs 철학』, pp.41 ~ 43 표현을 많이 다듬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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