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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신학에 관하여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17:54

1. 개인적으로 언약사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2. 언약사상 또는 언약신학 또는 언약신앙이라는 말은 꽤 모호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①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구속사 가운데 언약을 맺으시면서 관계해 오셨다는 신학(내지 사상)이고, ② 다른 하나는 선택 받은 자들의 집단 보다 좀 더 넓은 인적 적용 범위를 갖는, 언약 공동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그로부터, 실천적 측면에서 신자들의 여러 의무들을 이야기하는 신학(내지 사상)을 말한다.


3. 이 두 가지 중 앞의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고, 충분히 성경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후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성경 위의' 신학이다. '성경 위의' 신학이란 성경 자체에서 기반했다기 보다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사항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목적에서 창안된 신학적 개념을 말한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라 생각된다.


4. 후자의 언약사상에서 주일성수, 십일조, 목사와 신도의 관계, 유아 세례, 성찬, 사순절, 일천번제 등에 대한 여러 주장들이 기원한다. 이 '후자의 언약사상'은, 구원 받은 신자들에게 무언가 '구약틱한' 문화 컨텐츠를 제공하고, 프로테스탄트로서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려고 했던, 1500 ~ 1700년대의 맥락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성경적 기반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기독교를 무엇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로 만든다는 데 있다. 율법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생활양식의 일종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고, 또 의전과 의식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주일을 성수했는가, 십일조는 다 냈는가, 첫 월급을 전액 헌금해야 하는가, 입교는 했는가, 가정 예배는 매일 드리는가 등등에 얽매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에는 이러한 '후자의 언약사상'의 결론들만이 수입되어 들어 왔다는 것이다.


5. '후자의 언약사상'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6. 하나님은 먼저 주님의 백성과 그 자녀들을 '언약'으로 부르시고, 그 다음에 중생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 점에서 칼뱅은 '언약으로의 부르심'과 '택자로 예정하심'을 각각 '넓은 의미의 선택'과 '좁은 의미의 선택' 또는 '일반적 선택'과 '개별적 선택'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약'은 '버림받는 것과 구원으로 선택되는 것 사이의 중간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 이런 구도는 오늘날 신약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해서 다 구원받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넓은 의미로의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설명하기 위해 언약사상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이미 교부시대부터의 전통이며, 이것은 중세를 거쳐서 칼뱅에게까지 잘 이어집니다. 칼뱅은 '은혜언약'이 성경의 통일성을 붙잡아 주는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 칼뱅은 구약시대의 언약과 신약시대의 언약은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며, 다만 집행되는 양태에 있어서만 다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 칼뱅은 언약이 구원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칼뱅은 성경이 다만 무시간적인 진리의 책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펼쳐지는 모습을 그려낸 책이라고 보았습니다. 언약을 중심으로 구원 역사의 통일 성을 묶는 것은 교부들의 전통입니다.

… 칼뱅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제대로 깨달을 때에 인간은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셔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비와 은혜 가운데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우리 또한 자유 속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 칼뱅은 언약의 일원이 되는 것이 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언약이 언급되는 자리마다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사 55:3 주석).

… 열과 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신실한 백성들은 언약적 축복을 더욱 풍성하게 누립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만족, 평안과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주님의 선물을, 아니 주님 자신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이런 언약적 비밀은 그것을 누리는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 예정은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행동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결정된 예정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약은 다릅니다. 언약에는 언제나 인간의 순종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언약이 지닌 복과 저주의 조건성이 그것을 잘 지시해 줍니다. 예정이 영원 전에 이뤄진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언약은 시간과 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 예정론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르침이었습니다. 반면에 언약론은 종교개혁 시대부터 특별히 개혁신학 내에서 본격적으로 생성된 교리였습니다.

… 칼뱅의 언약사상은 한 마리도 말해서, "언약은 그 기원에서는 일방적(monopluric, unilateral)이며 그 유지에 있어서는 쌍방적(dipleuric, bilateral)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언약의 기원, 즉 언약이 체결될 때는 일방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기 때문입니다. … 죄인인 인간은 다만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뿐입니다.

하지만 언약의 유지, 즉 언약이 성립된 이후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에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일종의 상호적인 책임 관계가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적 의무 사항들을 지킬 때 언약적 복을 누리고, 그것을 어길 때에 언약적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약이 유지되는 것에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인간의 책임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 언약은 예정이 실현되는 구체적인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최종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길이 됩니다.

… 주님께서는 설득과 권면을 통해서 우리가 자원하는 심령으로 언약적 요구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지닌 자유와 고결함이 가장 빛나게 하셨습니다.

… 언약은 신자와 그 자녀들과 체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자녀들이 언약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신앙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개혁교회/장로교회 성도들은 자녀가 아직 어린 상태에서 스스로의 신앙고백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을 언약의 자녀로 봅니다. 나중에 장성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주님을 부인하기 전가지는 신자라고 생각하며 돌보는 것입니다.

… 예정은 개인적이지만, 언약은 언제나 공동체적이었습니다.

… 언약은 성도의 사회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언약은 한 성도에게 속한 모든 것, 그의 가정, 재물과 소유, 영향과 권세, 직분과 직업, 지성과 마음, 학문과 예술, 사회와 국가 속에서 실현됩니다. 나만 선택받았다고 좋아하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내가 속한 직장과 학교, 일터와 삶의 모든 자리가 언약백성의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는 장소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구원하신 다음 즉시로 그를 데려가시지 않고 이 땅에 계속해서 남겨두시는 까닭은, 그로 인하여 이 땅이, 이 사회와 국가와 세계 전체가 선한 영향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로서,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써 이 세상 전체를 떠받들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예정은 확고하고 결정된 것이지만, 언약은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기에, 교회 내의 불신자 문제라든가, 성도의 자녀들 가운데 믿지 않는 자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 칼뱅은 은혜언약의 일원이 되는 것과 개별적 선택을 받는 것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부르심을 받거나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더라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롬 9:6, 창 17:7, 겔 16:21, 마 15:24에 대한 칼뱅의 주석).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볼 적에 결국 은혜에서 떨어지게 될 자와도 언약을 맺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칼뱅은 은혜언약이란 일종의 중도적(middle way) 기능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칼뱅은 하나님의 "이중적 선택"에 대해 말합니다. 일반적인 선택은 은혜언약 안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개별적 선택은 마음을 변화시켜 중생과 회심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 요약하자면, 은혜언약은 하나이며, 언약을 받은 자들 가운데 택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의 범주와 선택의 범주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교회 안의 성도들을 대할 때에, 함께 구원받은 성도로서 대해야 합니다. 곡식들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그것을 구분해 낼 능력도 없고, 그렇게 할 권리도 없습니다(마 13:24~20).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병훈,『예정과 언약으로 읽는 그리스도의 구원』, pp.69 ~ 96]


7. 반면에 동의할 수 있는 언약사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8.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심으로써 열두 제자가 구약 시대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상응하는 새로운 열두 지파의 대표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열두 제자가 이렇게 종말의 새 이스라엘,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게 된 구속사적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첫째,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창 12:1~3, 15장, 17장)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건설해 나가실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먼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육신적 자손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국가를 만드시고, 이 이스라엘 국가 안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보내 세계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② 둘째, 하나님은 모세 언약(출 19장 ~ 24장)을 통해 신정국가를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신정국가의 법인 율법에 순종하면 가나안 땅에서 오래 번성할 것이지만, 율법에 불순종하면 가나안 땅에서 추방당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③ 셋째, 하나님은 다윗 언약(삼하 7장)을 통해 다윗의 후손이 다스리는 영원한 왕국에 대해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 사후 이스라엘은 열 지파로 구성된 북이스라엘 왕국과 두 지파로 구성된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주전 722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햇고, 남유다 왕국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④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는 세계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약속하셨고, 다윗 언약을 통해서는 다윗의 후손이 다스리는 다윗 왕국이 세계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영원한 왕국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전 8~6세기에 많은 선지자들을 불러,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 언약에 따라 심판을 받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지만 장차 하나님이 이스라엘 및 유다 백성과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언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새 언약이 필요하게 된 것은 옛 언약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옛 언약을 어기게 된 것은 옛 언약 자체의 내용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 사람들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여 영원한 죄 용서를 해 주시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성령님을 내주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법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김으로써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해서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언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렘 31:31~34). 하나님이 약속한 새 언약의 내용 가운데는 종말에 다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통일되어 새 다윗 왕의 통치를 받게 될 것도 포함되어있습니다(렘 23:5~6, 겔 37:15~23). 예수님은 바로 이 새 언약을 체결하려 오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을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는 아브라함 언약에 따라 모든 민족을 포함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는 다윗 언약에 따라 다윗의 후손이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 백성 안에 내주하시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열두 제자를 선택하신 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새 언약의 성취로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새 이스라엘, 종말의 하나님 백성을 만들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새 이스라엘 또는 종말의 하나님의 백성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백금산,『만화 기독론』, pp.165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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