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님의 블로그
창세기의 해석에 관하여 본문
(1) 창세기에서 이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창조되었는지를 읽어내려 하는 것은 창세기의 저술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창세기는 당시 주변의 고대 근동 신화와 유사한 문화적 비유적 구조와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나도 수긍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창세기에서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배우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최소한 창세기 1장의 저술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이런식의 해석경향이 자연과학자들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신앙 혹은 자신들의 직업을 지켜내려는 '문돌이'들의 방어 전략인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문학적, 비유적' 이라는 표현을 서서 아예 논의의 차원을 달리해버리면, 정면 충돌해서 맞짱뜨는 것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기독교를 관념과 이념, 교훈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총체적 진리(Total Truth)다. 이점에서 나는 쉐퍼주의자다. 유독 창세기에서만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읽는 해석에서 그토록 많은 양보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런 식으로 양보하는 견해에 따르면 창세기는 1장 1절 이후에 12장이 와도 무방하다. 반대로 1장 ~ 11장을 굳이 기록하여 보존해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2) 물론 내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관심법을 쓰듯 해서 지적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서양에서는 (진실이 무엇인가를 맞히는데 목적이 있기 보다는) 현존하는 fact들을 두고 얼마나 독창적인 해석을 내어 놓을 수 있는지를 두고 경연하는 듯한 경향이 학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창조와 진화에 관한 논의에 관하여|작성자 플란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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