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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님의 블로그
1. 학문연구방법(스콜라학적 방법) ① 문헌연구의 시작과 성서의 권위 : 중세의 학문연구는 먼저 성서와 교부(敎父)의 저서,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철학자와 기타 저술가가 쓴 저서의 문헌적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그 저서들의 독해 · 주석 · 해독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때 성서는 신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서 가장 중시되었다. ② 신앙의 이해 : 신의 말은 먼저 신앙에 의해 인간에게 받아들여지는데, "신앙"은 곧 인간이 거기에 내포된 신의 가르침을 "이해"하여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앙의 이해(intellectusfidei)"라는 것이 스콜라학이 지향하는 목표였다. 이때 신앙과 이해(또는 이성)는 서로 한 쪽이 다른 쪽을 요구하면서도 한 쪽이 다른 쪽에 용해되어 없..
[정리 되지 않았음. 자료만 모아 놓았음.] 1.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항상 변화하는 우주 속에 불변의 원리가 존재하고, 이 질서가 logos이며, 이 logos의 발현이 법이라고 하였다. 이 불변의 근본원리는 자연계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여,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을 결부지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1-1. 소피스트 이전에는 nomos를, 모든 국가에 타당하고 정당하며 성스러운 사회질서의 원리(사회규범)임과 동시에 영구불변하는 보편타당한 우주질서의 원리(자연이법)라고 하여, 피시스(physis)도 노모스(nomos) 속에 포함시켜, 양자를 본질적 하나의 것으로 이해하였다. 1-2. 소피스트가 활동하던 시기에, 평등자연법주의자인 안티폰(Antiphon)은 법률 · 관습..
[자료 모으는 중] 1. 법(률)실증주의는 법전의 논리적 완결성(Logische Geschlossenheit)과 법규의 무흠결성을 전제로 엄격한 개념구성하에 국가가 제정 또는 채택한 법의 법조문을 형식적 · 논리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말한다. 실정법을 초월하는 자연법의 존재를 부정하고, 법과 도덕을 분리함으로써 양자의 필연적 관계를 부인하였다. 19세기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 여러 형태로 등장하였다. 경험주의를 사상적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정의가 언제나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왜냐햐면 법실증주의적 입장을 취한 법학자마다 입장이 조금씩은 다르기 때문이다. '법실증주의'라는 것은 선험적 개념이 아니다. 법철학상의 개념적 분류에 불과하다. 이하의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법실증주의..
'하나님 나라'를 최근 강조하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갖는 근본적인 의문점은 이것이다. 예컨대 김세윤 교수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경우(D-day와 V-day의 관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의 수가 계속 더 들어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계속 더 확장되어 갈 것인데, 그렇다면 V-day에 이르리 전까지 이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진다는 것인가? 점진적으로 완성의 지점에 이르다는 말인가?
팀 켈러는 『당신을 위한 로마서1』 149~150쪽에서 "구원의 수단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파기되고 무효가 되었을지라도, 율법 자체가 파기되거나 율법의 요구사항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은 여전히 준수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지켜야 한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자신의 완전한 순종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그것을 통해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 따라서 복음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죽음과 심판을 가져올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과 누군가 대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심판을 통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안에서 율법은 파기되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세워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의문점은 이것이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신자가 이 땅에서 살아 내기 원하시는 삶의 양태를 말한다. 소명과 직업이 서로 구분되는 것이고, 모든 소명이 꼭 직업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소명이 한 사람의 인생의 시기별로 달라질 수도 있다(즉, 복수의 소명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궁금한 것은 ① 칼뱅은 모든 개개인에게 소명이 있다고 보았는가(제랄드 싯처는 그렇게 보았다고 말한다)? ② 칼뱅이 뭐라고 생각했는지와 별개로, 진짜로 모든 개개인에게 (그 사람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했는지와 별개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소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③ 하나님도 우리가 개념화하는 '소명'이라는 것을 일종의 실체로서 이해하실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에 불과한 것일까?
'결정론'이라고 말할 때 성향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에서 말하는 경우와, 임의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에서 말하는 경우에서 각각 의미가 다르다.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성향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결정론을, 우리의 선택을 비롯한 모든 사건들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로 이해한다. 그러나 임의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들이 우리의 의지 작용에 의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의지의 내용이 각 개인의 선택에 의해 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역시 결정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성향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은 자신들이 결정론과는 다르다고 하는 반면, 임의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은 뭔소리냐 너희들도 결정론의 일종이다 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 가난한 사람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이나 가진 사람이나 똑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정당하기도 하고, 부당하기도 하다.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막무가내이고 무례하며 부당하고 경우 없이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내가 권력을 갖는다면 억울한 사람, 원통한 사람,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살 낙이 없는 사람을 어루만지고 고치고 싶다. ○ 국회 각 상임위가 계속해서 입법활동을 한다. 궁금한 점은 왜 그렇게 많은 입법수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국회가 이런 입법활동을 3~4일 멈출 경우 어떻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 나는 롤스주의자다. 그러나 이것이 엄격하게 현실에거 구현될 수 없다는 것 쯤은 알 정도의 현실주의자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이익 균..
(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2) 미칼렌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3) 바르톨로메 에스테만 무리요(4) 렘브란트(5) 카날레토(조반니 안토니오 카날)(6) 르누아르(7) 엥그르
성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① 그것으로 하나님과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알아 구원을 얻으라고? ② 그것을 열심히 탐구하고 연구하여 거기서부터 원리를 추출하여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여 삶을 그것에 따라 재편성하라고? 로이드 존스는 후자를 너무 중요하게 여겼지만 왠지 나는 성경 자체가 후자를 너무너무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목저긍로 주어진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주어졌다고 한다면, 그 목적을 위해 성경에만 확연한 우월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목적으로 주어진다 하더라도 성경 자체가 그런 목적에 대해 너무 적게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