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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

종교 다원주의의 기원

하나님앞에서진실함 2016. 5. 15. 18:05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로크는 유럽이 최종 조정자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였습니다. … 로크의 지식론은 (종교) 다원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그의 관심은 「인간지성론」 4권에서 다루고 있는 도덕과 종교의 문제에 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반목, 개신교 안에 있는 종교적 열광주의자들의 움직임, 로크는 이러한 것들이 지속적인 사회적 불안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 요소를 지식 이론으로 극복해보려는 것이 그의 주저의 실천적 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만이 관용에 대한 그의 편지, 교육론 그리고 기독교의 합리성에 대한 변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로크는 무엇보다 '지식'과 '믿음'을 엄밀하게 구별합니다. 서양의 오랜 지적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셈입니다.

  … 또 로크는 모든 지식이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식에는 확실성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지식 가운데서도 '직관적 지식'을 가장 확실한 지식으로 꼽습니다. 예컨대 "하얀 것은 까만 것이 아니다", "동그라미는 네모가 아니다", "3은 2보다 크다"와 같이, 추론할 필요 없이 곧장 관념의 일치나 불일치를 포착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 그러나 모든 지식을 그렇게 곧장 얻을 수는 업습니다. 관념과 관념 사이의 일치 또는 불일치를 가리자면 관념과 관념을 이어 주는 매개 관념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관념을 매개하는 일을 로크는 '추리'라고 부릅니다. … 이처럼 지식에는 직관을 통한 지식뿐만 아니라 추리를 통해 증명에 이르는 지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명확하기는 하지만 직관을 통한 지식보다는 확실성의 정도가 낮습니다.

  … 어쨌든 로크에 따르면 확실성이 보장될 수 있는 지식은 오직 직관과 증명을 통한 지식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은 단순한 의견이나 신앙일 뿐 지식이 아니라고 로크는 못박습니다.

  … 로크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영역에는 다원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 적어도 '지식'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라면 그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어디서 태어났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똑같은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로크의 지식론입니다. 로크의 지식론은 다양한 의견들과 주장들을 조정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전개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자, 그렇다면 로크는 다양한 의견들과 주장들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로크는 의견이나 주장으로 제시된 명제의 개연성을 측정하고 그것에 따라 신뢰성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 어떤 명제가 개연성이 높다고 말한다면 이는 그 명제가 참인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어떤 주장의 개연성을 알자면 주어진 명제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힐 만한 다른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 그러므로 로크는 단순한 의견과 증언을 구별합니다. 증언은 적어도 몇 사람만은 그 내용이 실제로 참임을 '지각'할 수 있지만 단순한 의견은 그럴 가능성 조차 없는 것입니다. 개연성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다름 아닌, 로크식으로 철저히 정의된 '지식'임이 드러납니다.

  어떤 명제가 참일 수 있는 정도는 그것이 단순한 의견에 근거했는가, 아니면 실제로 지식을 가진 사람의 증언(지식)에 근거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참이라고 믿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개인의 체험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주장한다면 그럴 만한 '증거'가 있는가 검토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증거가 결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다면 열광주의자들의 맹신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크는 "어떤 명제에 대한 동의는 그것이 계시임을 입증해 주는 증거를 넘어서지 않을 때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신앙조차도 그것이 보여주는 증거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이렇게 볼 때 로크는 어떤 의견이나 믿음에 일종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덕적 의무가 있듯이 의견과 믿음 혹은 신념에 대해서도 일종의 '인식적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근거나 증거 없이 아무렇게나 어떤 의견이나 믿음을 가질 수 없을 뿐더러 남에게 그것을 믿도록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믿음에는 무엇보다 '증거'(evidence)가 확실해야 합니다.

  둘째, 증거를 모은 다음에는 그것을 근거로 하여 문제가 된 명제(주장)가 참된 것으로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검토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검토하고 평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개연성의 정도에 따라 그 명제를 좀더 굳건하게 또는 덜 굳건하게 믿는 일입니다. 이 때 믿음의 확신은 주어진 증거와 개연성의 정도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비례의 규칙을 지켜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면 우리는 증거가 빈약하고 개연성이 낮은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확신에 차 있을 수 있습니다.


  … 로크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 로크는 기독교와 같은 계시의 종교는 그것의 증거와 개연성이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서로 배척하고 죽일 정도로 굳걷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는 이유를 로크는 인식론적인 데서 찾았습니다. 가톨릭 교회도, 개신교도 목숨을 걸고 싸울 정도로 그 주장의 증거를 확실하게 내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포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는 상호 관용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로크에 따르면 지식의 영역에는 다원성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불확실성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관용의 필요성도 커지고 불확실성의 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관용의 필요성도 작아진다"


  중교와 도덕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능한 한 관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주장일지라도 확실한 것에 대해서 거부할 때는 불관용이 허용된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로크는 무신론자나 건전한 사회 관습을 해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공권력이 개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로크는 무정부적 관용론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건강한 상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의 종교철학과 정치철학의 특색이기도 합니다. … 로크는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이성을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 (그런데 모두가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로크는 세가지 이유를 제시하는데, 그 중 세 번째가 전통의 영향입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부모나 이웃, 목사나 교사를 통해 내려온 전통을 따라 살기 때문에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에 대한 로크의 비판을 볼 수 있습니다. … 로크는 전통 자체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전통을 지혜의 보고가 아니라 오히려 오류와 악덕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전통과 권위를 거부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사용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본조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알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통에 맞선 상대자로서 주체적 즉, "타인의 의견을 개의치 않고 사물 자체의 본성을 직접 탐구하는" 개인의 등장입니다. 남이 옳다고 했기 때문에 옳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탐구해 본 후 옳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로크는 전통과 관계 없이 오직 성경에 바탕을 둔 순전하고 단순한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라고 봅니다. 따라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바탕으로 예수와 사도들의 삶을 재구성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로크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믿음만이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신앙에는 반드시 도덕적 순종이 따라야 하고, 신학적 차이는 기독교 신앙에서 부수적이므로, 교리적 차이에 대해서는 서로 관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강영안,『강교수의 철학이야기』, pp.164 ~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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