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님의 블로그
성경해석의 역사 본문
(1) 지난 2,000년의 성경 해석 역사에서 해석자들이 본문의 역사적(본래적) 의미에 천착한 기간은 최근 300년에 불과합니다. 그 이전의 성경 해석 역사에서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곧 당시의 신앙 공동체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2) 제2성전기의 묵시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천사를 통한 계시'는 본문의 본래적 의미와 현재적 의미 사이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부각시킵니다. 즉 본문의 깊은 의미(현재적 의미)는 계시 없이는 도저히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3) 쿰란 공동체는 본래 인간 저자가 의도한 의미보다 성경 본문이 '현재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에 보다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4) 당시 유대인들은 성경 본문의 참된 의미를 현재적인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적용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깨달음을 의미하지만, 당시의 '현재적 의미'는 공동체적이었고 본문의 본래적 의미보다 하나님의 의도를 더 잘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을 때 역사적 정보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메시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진정 말씀하시려는 뜻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 마태와 바울은 모두 구약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오늘 우리'를 위한 의미를 찾아냈습니다. 이것은 신약성경 저자들의 독특한 성경 해석법이 아니라,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해석 경향입니다. 즉 그들에게 성경 본문의 진정한 의미는 언제나 현재적입니다. … 원문맥적 의미가 자연스럽게 현재적 의미로 이어지는 경우, 원문맥의 의미에 충실하게 성경을 번역했지만, 원문맥의 의미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불확실한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원문맥의 의미를 넘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얻으려 했습니다. …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 해석 중 일부는 제2성전기 유대인들의 통상적 구약 해석을 (교양의 일부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 특정한 해석이 제2성전기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그것을 신약성경 저자는 역사의 일부로 수용했습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그렇게 수용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 우리가 본문의 역사-문법적 의미에 해석학적 특권을 두는 것도 근대의 시대정신에 영향 받은 탓입니다.
(6) 안디옥 학파의 학자들이 성경 저자의 의도(본래적 의미)에 주된 관심을 가졌다면, 오리게네스가 대표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본문을 읽는 독자들, 그리고 본문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현재적 의미)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중세의 신학자들도 교부들처럼 교회의 문맥 안에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에, 본래적 의미와 다양한 현재적 의미를 모두 추구했습니다. 중세 초반에는 수도원이 성경 연구의 장이었기 때문에 본래적 의미보다 현재적 의미가 강조되었지만, 12세기에 대학이 생겨나면서 성경 연구의 경향도 학문적으로 변해 본문의 역사적 문맥을 현재적 의미와 더불어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8)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교리의 토대가 되는 의미는 '문자적 의미' 뿐입니다. 다른 의미들은 교리를 증명하는 데 사용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퀴나스는 도덕적, 영적, 비유적 의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아퀴나스는 이 현재적 의미들이 본문에서 억지된 것이 아니라면, 매우 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9) 성경이 명확하다는 믿음은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인간 이성의 전적인 부패를 신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가진 사물에 대한 인식능력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 종교개혁가들이 가톨릭 전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성경이 라틴어에서 각 민족의 언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 이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알레고리적 혹은 신학적 해석보다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우선하는 태도를 낳았습니다. 대중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의미는 본문의 문자적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10) 루터의 유명한 해석학 원리, 곧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와 "오직 성경으로"가 전제하는 것은 성경의 각 본문이 성경 전체의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경의 본문이 원저자나 원문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정경적 주제에 의해 결정됨을 의미합니다. … 이러한 종교개혁 전통에 반대해 슐라이마허는 해석의 목적이 최초 저자가 본문을 작성했을 때 의도한 의미를 발굴하고, 그것을 당시의 문학적, 역사적 문맥에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슐라이마허에 따르면 해석학의 목적은 저자의 의도를 밝혀내어 고대 세계를 저자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저자의 의도에 대한 강조는 성경의 신학적 통일성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주장을 약화시켰습니다. … 성경 본문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그 본문의 최초 독자(원자자가 소통하려 했던 독자)가 아니라는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 슐라이마허는 모든 종류의 텍스트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해석 규칙을 고안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해석의 문제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통이 벌어질 때마다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해석학을 "다른 사람의 말을 정확하기 이해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그의 해석 규칙은 모든 인간 소통물에 적용됩니다. … 본문이 의미를 가지려면 특정 언어 공동체의 문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해석은 반드시 그 문법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의 문법적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 슐라이마허 해석학의 두 번째 측면은 심리적 이해입니다. 심리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본문이 저자의 의도를 완전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그것은 본문의 행간 의미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심리적 이해는 엄밀하게는 가설적 지위를 가집니다. 즉 본문 저자의 저술 동기에 대한 가설적 이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라이마허에게 이 심리적 이해는 본문 이해의 필수적 과정입니다. 문법적 이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없고, 심리적 이해와 함께 본문 해석을 완성시킵니다.
(11) 필자가 주장하려는 것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주의적 진리관에 근거한 성경 해석이 지나친 해석학적 특권을 얻을 때, 의미의 위기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책이 된다는 말입니다.
(12) 근대주의적 세계관에 따르면 의미는 이성이 제공하는 원칙을 대상에 적용할 때 얻어지는 것이지만, 가다머에 따르면 본문과의 대화를 통한 해석자의 인격 형성(Bildung)이 의미 발견의 핵심적인 과정입니다. … 본문의 의미를 역사-문법적 의미에 국한시킨 것은 성경 해석사 2,000년 가운데 최근 수백 년에 불과합니다. 가다머도 본문이 단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는 역사주의와 낭만주의의 주장을 거부합니다.
(13) 리쾨르는 가다머와 함께 성경의 의미가 저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원저자의 의도보다 본문이 더 큰 해석학적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저자가 본문을 완성한 순간, 본문은 독립적인 지위를 가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본문이 가진 자율성이 증대되지요. 결과적으로 본문의 현재적 의미는 저자의 통제를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 성경 비평 학에서 저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이유는 저자의 의도가 본문의 의미라는 계몽주의적 전제 때문이었습니다. … 그러나 리쾨르는 성경이 명확하게 저자를 밝히는 경우에도 '본문'이 정경이 되어 신앙 공동체들 사이에 전승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원저자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김구원,『성경, 어떻게 읽을 것인가』, pp.105 ~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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