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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 방법 본문
"인간, 특히 그 중에서도 남자들은 절대적으로 충성할 대상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성경 해석에 대한 온갖 (다른 말로 '도그마'라 불리는) 규제적 규범들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1) 만약 올바른 해석 방법에 의해 확정된 사실관계가 그대로 사실이 아닐 경우에,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전체 취지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라면 그에 대한 반대 증거들은 배척되어야 한다.
(2) 귀납적으로 형성한 개념을 규범력을 갖는 공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구성한 거의 대부분의 개념들은 구체적인 맥락들 중에 흩어져 있는 공통되는 내용들을 편의상 귀납적으로 묶어 만든 개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자체가 다시 살아있는 규제적 성경 해석 원리로서 작동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것은 횡포다.
(5) 성경은 그 화자가 하나님이라는 점을 감안하는 한도에서, 다른 고전 문헌들과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11) 무류한(infallible)이라는 단어는, 성경이 그 목적을 종교적으로 성취하는데는 실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앤드류 제노스(Andrew C. Zenos) 교수의 견해에서 비롯되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성경은 모든 종교적이고 윤리적이며 영적인 가치에 있어서 신앙과 실천의 틀림이 없는 규칙이다. 그러나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성경은 많은 실수와 오류, 그리고 불일치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올리버 버스웰,『조직신학 1권』, 291쪽]
(13) 무오성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① 결국에 중요한 것은 규범적인 일이므로 결국에는 이 부분에 대해 논해야 하겠지만, '먼저'해야 할 일은 일단 성실하게 이와 관련된 사실들을 기술적(descriptive)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일단 무엇이 fact인지를 자세하게 이야기 하는 일이 필요하다. ② 또 반드시 확정되어야 하는 부분은 하나님이 이 종이에 적힌 기록을 남겨 주신 이유와, 이런 형태로 남겨주신 이유, 오류가 있다면 오류를 보유한 채로 두신 이유, 이렇게 편집되고 편찬되어 보존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이다. 심지어 하나님은 당대의 일차적 수신자들만을 위해 성경을 기록하신 것인데, 우리가 그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성경의 상당 부분의 문자적 기록의 내용이 실제 세계와 일치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영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내전기』의 통찰이 뛰어 나듯이, 그것을 적은 기자들이 제대로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연일 수도 있다.
(14) 성경은 당대 독자들의 상식에 기초해서 쓰여졌다.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다. 특히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인들의 세계관을 고려하여 쓰여졌다.
(15) 설교자는 무엇보다 먼저 성경의 해석자이다. 그의 임무는 엄밀히 말해서 두 가지 과정을 포함한다. 먼저, 본문이 그 당시 청중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다음, 본문이 오늘을 사는 신자들의 실존적 삶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이 첫 번째 과정을 해석(exegesis) 두 번째 과정을 해설(exposition)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의미에, 후자는 의의에 관심을 가진다. [정근두, 『마틴 로이드 존스에게 배우는 설교』, p.82]
(16) 성경 무오성이란, [① 시, ② 비유, ③ 환상에 대한 기술(description), ④ 메시지 전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표현을 사용한 부분] 이외의 부분에서는, 성경이 언급하는 사실 대조가 가능한 모든 진술은, 사실과 일치한다는, 성경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는 성질을 말한다. 이 개념을 이렇게 고정시키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이 개념을 이렇게 고정시키고 나서 성경 무오성 개념에 관한 논쟁을 하여야 한다.
(17) 나는 성경 무오성을, "성경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 언제나 옳다"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점에 있어서는 사실 대조를 했을 때, 성경의 진술이 거짓(false)일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런데 이 개념에도 사실은 문제가 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바에 대해서는 왜 성경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즉, 틀린 진술에 기반하여 말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할 수 있다. 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쓰여진 책이 아니다. (영감에 의해 쓰여졌다는 말은, 그 영감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성경 기자가 성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②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쓰여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자들이 갖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오류를 용인하셨다. ③ 성경은 하나님에 영감에 의하여 쓰여졌고, 시, 비유, 환상에 대한 기술, 의미의 전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표현을 사용한 부분 이외의 부분이면서, 사실대조가 가능한 부분에 대한 성경의 기술과 반대되는 증거들에 대한 인간들의 해석이 틀렸다. 성경에는 근대 종교개혁 이후의 보수적 신학자들이 생각하던 그런 '비오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18) 무오성과 관련해서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은, 전반적인 목적이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사실인 것이 중요하다면 사실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19) 무오성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자에게 영감을 주셨고, 그 구체적인 기록은 그 영에 대한 기자의 반응의 결과물로 이해하는 수도 있다. 하나님은 무엇이 적히도록 영감을 주셨지만, 그 기록과정 자체에는 직접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은 이 기록을 세대마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사용해왔다고 보는 것도 가능한 한 가지 입장이다. 그러면 무오성 문제를 피할 수는 있다.
(21) 나는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에게 말씀하실 때, 필요하다면 사실의 정확성을 훼손하는 것쯤은 하나도 개의치 않으셨다고 본다. 이것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 마음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창작물로 본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이 무오성 개념을 포기하고 나니 성경이 더 은혜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가의 관점에서 성경을 더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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